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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장 아기(서정오 글/한태희 그림/봄봄/2012. 6. 20./12,000원)
 ‘감은장 아기’는 제주도에서 전해지는 무속 삼공본풀이다. 민담에서는‘내 복에 산다’라는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너는 누구 덕에 먹고 사느냐?”
는 부모님의 물음에 두 언니들과는 다르게 셋째 딸이
“하늘님 덕, 땅님 덕, 아버님 덕, 어머님 덕도 있지마는 내 덕에 먹고 삽니다.”
하고 당당하게 대답한 대가는 가혹하다.
화가 난 부모님은 ‘은혜를 모르는 것’이라며 셋째 딸을 내쫓는다.
셋째 딸은 갑자기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지만 집을 나가면서도 당당하다.
옷 몇 벌, 쌀 몇 되 챙겨서 암소 등에 싣고
“어머니 아버지, 부디 잘 계십시오.”
하고 집을 나선다.
셋째 딸은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재주도 있어서, 좋은 남편도 찾고, 부자로 잘 살게 된다.
반면 두 언니는 집을 나서는 셋째가 돌아오지 못하게 거짓말을 하다가 셋째의 말대로 지네가 되고, 버섯이 된다. 세 딸이 다 사라지자 속이 타서 허둥지둥 나오던 부모님은 문설주에 눈을 부딪쳐 장님이 되고 만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나 지금이나 셋째의 당당함이 역시나 매력적이다. 그 당당함 그대로 셋째는 사람의 운명을 다스리는 신이 된다.
결국 사람의 운명이란 하늘의 덕, 땅의 덕, 부모의 덕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뜻일 게다.
새삼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아이를 키우며 ‘너 키우느라 엄마가 너무 힘들다!’는 투정을 내뱉던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런 투정 속에는 ‘네가 이렇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다 부모 잘 만난 덕이야!’라는 마음이 깔려 있다. 부모를 잘 만났다면 그것 역시 아이의 복일 수 있다. 또 부모는 아이 덕분에 힘을 얻어 사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애써 그런 부분을 부정하고 모든 걸 부모의 덕으로 돌리고 싶어진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아이를 진짜 제대로 키우려면 아이가 부모의 굴레에 갇히게 해서는 안 된다. 셋째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아이가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걸 인정해줘야 할 것이다.
운명의 신이 된 감은장 아이의 본풀이를 그림책으로 담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이야기 본래의 의미를 제대로 잘 풀어냈다. 마지막에 지네가 되고 버섯이 됐던 언니들도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는 부분은 필요 없지 않았을까 싶긴 하지만 별 무리는 없다.
인물과 배경을 그림자극처럼 표현한 것도 이야기의 분위기를 잘 살려준다. 그림자 그림이 세세한 표정이나 장면을 보여주진 못하지만 대신 이야기에 더욱 몰입하게 해 주면서 인물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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