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딸은 어디 있을까?(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글, 그림/논장)
 “엄마, 혹시 이 책 있잖아……, 엄마가 쓴 거야?”
화장실에 가면서 제 책상 위에 있던 그림책을 한 권 들고 갔던 아이가 갑자기 이렇게 묻습니다.
“응? 왜? 무슨 소리야?”
“이 책 엄마가 쓴 거 맞지?”
“아닌데……. 왜 그렇게 생각해?”
“이거 완전 내 이야기야. 엄마가 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나에 대해 자세히 알지?”
아이는 화장실에서 나오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이제 몇 달만 지나면 중학교에 들어가는 아이가 그림책 한 권을 보며 보인 반응이 참 재미있었지요. 저도 책이 궁금해졌습니다. 사실 이 책은 제 책상 위에 있긴 했지만 저는 아직 못 본 책이었거든요.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폴란드 작가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책을 내고 있는 특별한 이력을 갖고 있지요. 지난 2011년에는 《마음의 집》(창비)으로 볼로냐 라가치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고요.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그림은 단순하지만 그 속에는 참 많은 것들을 담고 있어요. 발상의 전환이랄까? 고정 관념을 깨주기도 하지만 일상에서도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듭니다.
《우리 딸은 어디 있을까?》도 마찬가지였지요. 책장을 휘리릭 넘겨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아이가 왜 자기 이야기라고 했는지를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새처럼 즐겁다가 물개처럼 슬퍼지고,
토끼처럼 얌전하다가 악어처럼 거칠고,
미어캣처럼 조심스럽다가 나무늘보처럼 태평스럽기도 하고,
물고기처럼 조용하다가 수탉처럼 시끄럽기도 하고,
뱀처럼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지만 아기 새처럼 연약하기도 하고,
거북이처럼 느리다가 캥거루처럼 날쌔기도 하고,
사자처럼 으르렁거리다 아기 양처럼 순해지기도 하고,
하마처럼 서툴기도 하지만 다람쥐처럼 잘하기도 하고,
코끼리처럼 힘차다가 아기 고양이처럼 여리기도 하고,
돌고래처럼 친절하다가 늑대처럼 사납기도 하고,
속으론 섬세하고 부드럽지만 겉으론 단단하고 숨기를 좋아하는 아이.
어떤 아이라도 ‘이건 바로 내 이야기야!’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는 없을 거예요.
아니,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라도 마찬가지예요.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이중성. 이 책은 바로 사람이 갖고 있는 기본 심리를 아주 기가 막히게 표현한 것이지요. 그것도 아주 적절하게 동물에 비유를 하면서요. 모르긴 몰라도 유치원생부터 어른들까지 누구나 이 책에 반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더욱 매력적이고 사랑스럽게 느끼게 해 주는 건 바로 그림입니다. 지금까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작품 속 그림은 아기자기하고 포근한 모습 보다는 냉철함을, 사랑스러움보다는 차가운 느낌을 주는 경향이었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아마도 이 책의 그림이 그냥 그림이 아니라, 조각 천에 한 땀 한 땀씩 바느질한 작품이기 때문일 거예요.
놀라운 건 작가가 바느질 작품만으로도 우리가 갖고 있는 이중성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지요.
표지를 보면 작업 과정을 보여줄 수 있는 배경이 보여요. 서랍장 속에 삐죽 튀어나와 있는 천들이랑 실패와 바늘, 가위 등이지요. 그리고 표지를 넘겨 왼쪽 표지 뒷면을 보면 표지를 바느질하고 뒤집은 모습이 그대로 보여요. 마치 우리의 겉모습 뒤에 감춰진 이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뒷표지도 마찬가지지요.
본문도 표지의 방식과 비슷하긴 해도 좀 달라요. 처음 시작 부분에서 숨는 걸 좋아하는 딸이 완전히 숨어버린 장면만 빼고는 말이에요.
아이는 숨기 좋아하는 아이답게 집안 곳곳에 숨지요. 농 안에, 침대 밑에, 빨래 뒤에, 책장 뒤에, 소파 뒤에, 커튼 뒤에……. 그리고 각각의 장소에서 아이는 상반된 두 가지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 표현 방법은 이래요.
예를 들어 볼게요.
우리 딸은 새처럼 즐겁다가 / 물개처럼 슬퍼요.
작가는 즐겁고 슬픈 두 상반된 감정을 농을 배경으로 두 박자 리듬으로 표현을 하지요.
새처럼 즐거울 때는 열려있는 빨간 색 농과 그 안에 걸려 있는 예쁜 옷들을 볼 수 있어요. 하지만 물개처럼 슬플 땐 농의 모습은 앞장에서 보여준 바느질한 농의 뒷면입니다. 거기에 슬픈 표정의 물개만 제대로 된 앞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뒷부분도 마찬가지지요. 얌전하다가 거칠고, 조심스럽다 태평스럽고, 조용하다 시끄럽고……. 겉으로 드러난 모습 외에 우리에겐 숨겨진 또 다른 모습이 있습니다. 작가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제대로 보여주고, 우리 내면의 또 다른 모습은 늘 숨겨져 있는 바느질의 뒷면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요.
가장 감동적이었던 건 딸의 모습이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이런 저런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는, 팔색조 같은 귀엽고 어린 딸의 모습이 아니었으니까요. 문 뒤에서 희미하게 얼굴을 내보이며 손을 흔드는 아이, 다음 장을 넘기면 그 아이가 휠체어에 앉아서 손을 흔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아이의 뒷모습은 아주 당당해보입니다. 휠체어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 빼면 평범한 아이의 모습 그대로의 당당함 말이에요.
제가 책을 보면서 갖고 있던 선입견처럼 마지막 장면에서 귀엽고 예쁜 아이가 등장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런 결말은 아무래도 좀 밋밋합니다. 두 박자 리듬으로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었듯이, 평범해 보이는 문 뒤의 아이 역시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맞습니다. 또 앞에서 말한 아이의 여러 모습은 평범한 아이나 장애가 있는 아이나 누구나 마찬가지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기도 합니다.
이 책은 그림책으로선 결코 적지 않은 56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니, 그림책으로는 적지 않은 분량이 아니라 아주 파격이라 할 만큼 많은 분량입니다. 하지만 지루하지 않습니다. 상반된 모습이 반복적으로 나오면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들고, 마지막까지 그 긴장을 늦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이 책에 사용한 천 조각들을 폴란드 전역에 있는, 서유럽에서 온 헌 옷을 파는 가게들에서 사 모은 것이라고 하네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이 책 속에 들어있는 것과 마찬가지겠지요.
2012년 첫 번째 새책으로 소개하기에는 조금 늦은 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꼭 소개해 보고 싶은 책이었기에 싣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