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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와
고블린
조지 맥도널드 지음/아서
휴즈 그림/정회성 옮김/김서정 해설/웅진닷컴/311쪽/2002.11.10.초판/9000원/215*170mm
 톨킨의《호비트》,
《반지의 제왕》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관심을 가질만한 책이다.
지은이 조지 맥도널드는 우리 나라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유럽과 미국에서는 환타지문학의
고전을 이야기할 때면 늘 거론되는 인물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루이스
캐럴이나 톨킨도 조지 맥도널드를 좋아하고, 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옛날에
드넓은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아버지인 어린 공주가 살았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런데 이 첫 문장이 심상치 않다. 분명 주인공이 ‘어린 공주’이긴
한데, 읽는 사람의 초점은 ‘옛날에 드넓은 나라를 다스리는 왕’ 쪽으로 간다. 왠지
‘어린 공주’의 운명이 ‘왕’의 어떤 점 때문에 비롯된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한 장을 넘기니 첫 문장의 느낌이 역시 맞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제목에서도 나오는 고블린의 존재에 대한 설명이 그렇다.
이
나라의 전설에 따르면, 고블린들도 한때는 인간들처럼 땅 위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왕이 이런저런 이유로 그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고, 그들이 원하지도
않는 의식을 치르도록 강요했다고 한다.……고블린은 얼굴이든 몸이든 소름이 돋을
정도로 추하고, 몸서리가 쳐질 만큼 괴상했다.……고블린은 인간의 보복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끔찍할 정도로 잔인하지 않은 정도에서 인간에 대해 배려를
했다. 하지만 그들을 땅 위에서 내쫓은 그들의 소유물을 빼앗아 간 왕의 자손들에
대해서는 대대손손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외모만큼이나
기괴한 방법으로 왕의 자손들을 괴롭힐 수 있는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다. 비록 몸은
왜소하고 기형이었지만, 그들에게는 교활하고 괴팍한 성격 못지 않은 강한 힘이 있었다.
이제
사건은 명확해진다. 왕을 아버지로 둔 공주와 고블린 사이에는 피할 수 없는 대결이
남아있는 것이다. 이렇게 대결 구도가 처음부터 빤히 드러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기대를 하게 된다. 마치 옛날 이야기를 들을 때처럼 말이다. 이처럼 어떤 이야기들은
먼저 기대를 하고, 그 기대감이 채워질 때 더욱 흥미를 느끼게 된다.
여기에는
공주의 고고고조할머니인 노파의 신비로움도 한몫 한다. 할머니이면서 겉모습은 아름다운
처녀와 같다. 신비롭다는 말은 전혀 나오지 않아도, 노파의 모습만으로 충분히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지은이는
확실히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나가야 아이들이 좋아하는가를 알고 있는 것 같다.
방정환 선생님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모두 그 이야기에 빠져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3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써 나가면서도 가끔씩 작가가 이야기 속에 끼여들곤 한다.
그건
그렇고, 우리 함께 공주가 있는 방 안의 풍경을 머릿속에 그려 보자.
방안의
풍경도 그냥 묘사하는 게 아니다. 금방 머리에 떠올리지 못할 사람을 위해서 친절하게도
함께 그 풍경을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그건 아마도 열 한명이나 되는 자녀들에게
자신이 쓴 동화를 들려주곤 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 게 아닐까 여겨진다. 어쨌든
책을 읽으면서도 마치 옆에서 누군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마음이 편하다.
이
책의 흥미진진한 모험담은 읽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처음
고블린과 공주의 피치 못할 대결의 원인을 제공한 왕에 대해서는 자꾸 생각하게 된다.
왕이 백성들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고, 만약 잘못 다스렸을 땐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지를
말이다. 사실 내용의 대부분은 공주와 고블린, 그리고 공주를 도와주고 구하는 광부
소년 커디, 노파의 이야기지만, 때론 가슴을 졸이며 신나게 모험을 마치고 책을 덮고
나니 이상하게도 '왕의 처신(?!)'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고개를 든다.
아이들도 그럴까? 아마 당장은 그걸 깨닫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알고 있게 될 거란 생각이 든다.
얼마 뒤면 대통령 선거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누구를 뽑아야 할지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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