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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제 목    보리 아기 그림책 가운데 <주세요 주세요>


아이랑 책읽기

 

한겨레신문 2005. 6. 13.

 

 “보리 아기 그림책 읽어 줬어? 아이가 좋아하지 않아?”
돌이 조금 지나자 먼저 아이를 키운 분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세밀화로 그린 보리 아기 그림책’을 권해 주셨죠. 물론 저도 이 책을 잘 알고 있었기에 진작 사 주었지요. 문제는 아이가 이 책을 통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였지요. 그나마 다행인 건 아이가 갖고 노는 건 좋아한다는 거였죠. 작은 크기의 책은 아이가 손에 들고 놀기에 적당했으니까요.
그리고 몇 달인가 지나자 아이는 이 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읽는 것보다는 책에 그려 있는 먹을 것들에 대한 관심이었죠. 책장을 넘기면서 과일이며 곡식, 채소, 물고기를 보는 대로 손으로 집어먹는 시늉을 해요. 유모차에 태워 나갈 때면 공중에서 뭔가를 따서 입에 넣고 우물우물하는 시늉도 하고요.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아이의 먹는 시늉은 점점 더 실감이 났어요. 고추를 먹을 땐 입을 손으로 부치면서 매운 시늉을 하고요, 자기가 좋아하는 귤을 먹을 때면 눈을 찡그리면서도 정말 맛있다는 표정을 짓지요. 같은 책이라도 아이마다 좋아하는 시기가, 좋아하는 부분이, 또 좋아하는 이유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 준 책이었답니다.
그런데 아이가 20개월쯤 됐을 거예요. 이 책이 경계 대상으로 바뀌는 계기가 생겼죠. 아이가 어느 순간 “아니, 아니” “싫어, 싫어”란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거예요. ‘네!"라는 대답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무조건 “아니, 아니” 또는 “싫어, 싫어” 두 가지 말만 반복하는 거예요. ‘얘가 왜 이렇게 부정적이 되었을까?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는 걸까?’ 하고 생각하던 참에 아이가 혼자 구석에서 너무 열심히 보고 있는 책이 있다는 걸 발견했죠. ‘보리 아기 그림책’ 가운데 한 권인 <주세요 주세요>란 책이었죠.
아이는 제가 읽어 주지 않아도 혼자서 정말 열심히 봤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빙긋 웃음도 짓고요. 아이가 과일 바구니를 들고 있는 엄마한테 “주세요” 하면 엄마가 과일을 하나씩 들어 보이면서 줄까 물어 보는 내용이죠. 아이는 그때마다 “아니, 아니” “싫어, 싫어”란 말을 반복하고요. 아이가 갖고 싶었던 건 과일이 아니라 바구니였거든요. 아직 자기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아이로서는 “아니, 아니” “싫어, 싫어”라는 말로 최소한의 자기 의사를 표시하는 거였지요.
얼마 전 이런 말을 들었죠. 아이가 이 책을 보고 나서 너무 반항적이 되었다고요. 그래서 아이가 못 보게 치워 놓으셨대요. 혹시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졌죠. 그리고 이런 분들께 꼭 말씀드리고 싶어지네요. “‘아니, 아니’ ‘싫어, 싫어’란 말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을 들어주세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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