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tal : 17, 1 / 1 pages  

이 름   
제 목    방정환 이야기의 맛과 힘(1)
방정환 이야기의 맛과 힘

 

방정환 이야기의 맛과 힘(1)

 

어린이도서연구회 옛이야기분과(이송희. 오진원. 김경애. 오호선)

 

1. 들어가는 말

'방정환'이라는 이름은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아마도 '어린이 날'을 알게되는 나이쯤 되면 '방정환'이란 이름도 함께 기억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쯤되고 보면, 방정환 선생님이야말로 우리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니 그 이름은 너무나 유명하지만 막상 방정환 선생님에 대해서는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은 '어린이 날'을 만든 사람으로 기억하는 정도이고, 어린이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저로서도 '방정환'하면 떠오르는 것이 우리 도서목록에 있는《사랑의 선물》이나 《어린이》지가 고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방정환 선생님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우리 동화 바로 읽기》(이재복/한길사)에서 평해놓은 것만을 읽고 '방정환은 이런 사람이었구나'하는 고정관념을 가졌습니다. 그러니 방정환 선생님의 작품을 볼 때도 이런 선입견을 가지고 보게 되었고, 아니 '방정환'에 대해서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철저하게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 계기가 된 것은 지난 해 하반기 연구 주제가 '방정환 옛이야기'로 잡히면서 부터였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것도 할 게 많은데 꼭 이걸 해야할까하는 의문도 가졌습니다. 교재로 살펴본 건 《사랑의 선물 1》(신구미디어)뿐이지만 하나 하나 작품을 함께 읽고 공부할 때마다 지금까지 방정환 선생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채 좋지않은 편견만을 갖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방정환 선생님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방정환 선생님의 옛이야기에 대해 다시 정리하기로 하였습니다. 막상 다시 정리하기로 하고 나니, 지난 번 교재로 보았던 《사랑의 선물 1》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이 책을 교재로 선택한 까닭은 이 책이 방정환 선생님의 옛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학기 동안 살펴보니 옛이야기는 절반 정도뿐이어서, 방정환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참맛은 느낄 수 있었지만 그 동안 방정환 선생님에 대해 갖고 있던 좋지 않은 편견이 잘못된 것이라는 막연함을 확실히 반박하기엔 부족하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방정환 선생님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서 편집하셨던 《어린이》지를 찾아보았습니다. 너무 많은 분량이기에 다 살펴보지는 못하고, 지난 번 고민의 연장선에서 살펴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린이》지에 실렸던 우리 옛이야기, 외국 옛이야기, 우화 들이 주요 관심사였습니다. 방정환 선생님의 글 가운데는 창작동화도 있고, 여러 가지 상식에 관한 글도 많이 있었지만 이 글들은 제외되었습니다. 다만 방정환 선생님의 생각을 살펴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생각해 '어린이 독본'은 함께 포함시켰습니다.

그 결과 다음 네 가지 주제로 나누어 함께 고민해보기로 했습니다.
첫째, '방정환 선생님의 들려주는 문학을 꽃피워야'입니다. 방정환 선생님은 들려주는 문학을 누구보다도 잘 실천하고 계셨고, 이 들려주는 문학으로서의 문체는 방정환 선생님의 글 속에 그대로 녹아있었습니다. 이제 방정환 선생님의 들려주는 문학을 활짝 꽃피우는 건 우리들의 몫이겠지요.
둘째, '어린이, 우리 역사와 함께하는 방정환 선생님'입니다. 흔히 방정환 선생님에 대한 선입관 가운데 하나가 감상주의적이고 역사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아무런 선입견 없이 방정환 선생님의 생각을 찾아보려 했습니다.
셋째, '참 우리 이야기를 밝히려 애쓴 것'에 대해서입니다. 방정환 선생님이 직접 쓰신 옛이야기는 별로 많지 않지만, 《어린이》지에는 많은 옛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현상공모를 해서 옛이야기를 싣기도 했습니다. 옛이야기를 홀대하던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방정환 선생님의 이런 노력이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중간에 맥이 끊겼던 것이 안타깝습니다.
넷째, '우화 대신 옛이야기를'입니다. 주제에서 보이는 것처럼 어린 아이들에게 우화를 들려주는 것에 대한 걱정이 앞선 글입니다. 이 글은 옛이야기의 큰 틀에서 우화도 포함된다는 고민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옛이야기는 좀 유치하게 보면서도, 아이가 유치원에 갈 나이만 되면 마치 필독서처럼 아이들에게 갖다주곤 하는 《이솝 우화》의 폐해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부모님들께는 가장 필요한 내용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 방정환 선생님의 들려주는 문학을 꽃피워야

≪어린이≫ 지를 보면 모든 것을 이야기로 풀어써서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동화뿐만 아니라 실화, 인물·역사, 과학, 지식, 지리, 놀이, 일기, 수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한 편의 짜임새 있는 이야기로 풀어써서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런 ≪어린이≫ 지를 보면서 ≪어린이≫ 지를 펴낸 방정환 선생님은 이야기의 본질을 꿰뚫고 그 힘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고, 본래 이야기꾼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읽을 거리, 볼거리가 없던 그 시대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해 주려 애쓴 방정환 선생님의 모습이 보입니다.

교육자와 부모들이 갖는 넓은 눈으로 볼 때 먼저, 어린이문학의 자리를 넓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문학이라면 동시·동화·소년소설뿐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다음 여러 가지 글들을 모두 문학이 되도록, 문학의 자리에 불러들여야 한다.
옛날 이야기(들은 이야기). 직접 겪은 이야기. 어린 시절 이야기. 수필. 편지 글. 전기. 역사 이야기. 과학 이야기. 동물·식물 이야기.
 이래서 '동화' 같은 것도 꼭 무슨 기·승·전·결의 완결된 형식을 갖춘 것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어디서 보거나 겪었던 일, 신문이나 책에서 읽은 사건, 들은 이야기라도 좋겠다. 유익한 내용이 들어 있고 아이들이 재미있게 들은 것 같으면 단편적인 것이라도 좋으니 수시로 이야기해 주거나 적어 두면 좋겠다. 그런 이야기들이 지금 동화나 소설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 말하는 '문학'이 될 수 없어도 좋다. 문제는 문학인가 아닌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즐겨 듣는가(읽는가) 듣기 싫어하는가에 있다. 어쨌든 아이들을 위해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어야겠다. 이러는 가운데 문학도 차츰 그 그릇이 넓어지고, 정말 아이들을 위한 문학으로 자라날 것이다.(이오덕, ≪재미있는 동화 읽기 어떻게 지도할까≫, 어린이도서연구회 엮음, 돌베개, 1991년 3월 1일, 63쪽)

이오덕 선생님은 '어린이문학의 자리를 넓혀야' 한다는 뜻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였는데, 방정환 선생님은 이미 70여 년 전에 아이들에게 이야기가 갖는 힘이 크다는 것을 깨닫고 실천한 분이니, 방정환 선생님은 그야말로 아이들의 세계를 잘 알고 존중하여 아이들과 함께 느끼려고 온몸으로 실현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이≫지에는 '사실동화' '잊혀지지 않는 불쌍한 동무' '소년 미담(美談)' '수재(水災) 미담' '마술단 소년 이야기' '동경 있는 조선 아이들' '착한 동무를 소개합니다' 같은 난이 있습니다. 이 난에서는 어려운 식민시대를 살았던 아이들, 그러면서도 서로 돕고 의지하며 한 시대를 거뜬히 살아 내었던 그 시대 아이들의 모습을 감동 깊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대의 모습이 담긴 실화를 이야기로 들려 준 것이 뒤에 <만년 셔츠>(≪어린이≫, 1927년3월, 5권3호) 같은 작품이 나오게 된 바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방정환 선생님이 쓴 창작 동화 <만년 셔츠>를 보면 주인공 창남이가 살았던 시대가 그대로 눈에 보입니다. 많은 백성들이 고통받으며 살았던 시대, 창남이가 처한 현실과 행동은 조금은 과장된 면이 없지 않으나 사실감 있게 다가오는 감동이 있습니다.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이≫ 지에 실화로 소개한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창남이는 영웅도 아니고, 뛰어난 인물도 아닙니다. 다만 그 시대를 눈물겹게 살아간 우리 아이 가운데 하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동 깊은 실화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려 했던 선생님의 뜻이 절실하게 드러나는 작품이지요. 몇 차례에 걸쳐 ≪어린이≫ 지에 실은 <20년 전 학교 이야기>(1926. 4·7·9·10월, 4권 6 ∼ 9호)도 이 이야기의 또 다른 바탕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인물·역사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이야기도 모든 것을 한 편의 이야기로 풀어써서 재미와 감동을 줍니다. '역사 동화' 난을 보면 일제와 어른에게 이중으로 고통받던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한 시대를 용감하게 살았던 인물을 가려 뽑아 들려주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인물로는 고주몽(23년 10월, 1권9호)·정몽주(27년10월, 5권7호, 29년2월, 7권2호)·양만춘(29년7월, 7권2호)·을지문덕(29년3월, 7권3호)처럼 나라를 세우거나, 난세에 나라를 지키고, 외세에 맞서 용감하게 싸운 인물, 조선 지도를 처음 만든 김정호(29년3월, 7권3호)처럼 국토 사랑을 실천한 인물, 이율곡(29년2월, 7권2호) 같은 한 시대의 철학을 제시한 인물과 그밖에 많은 애국지사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또 다른 나라 인물로는 '시골의 한 무명소녀로 조국을 구'한 잔 다르크(30년1월, 8권1호), '가난한 집의 아들로 대통령이 되기까지' 한 아브라함 링컨(30년1월, 8권1호) 같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들을 마치 옛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실감나고도 재미나게 들려줍니다. 어린이들은 역사의 사실, 역사의 인물을 이야기로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실제로 존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치 옛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처럼 느끼면서 사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그 맛은 어린이들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 자신도 인물과 동일시되어 그 속에서 위안을 얻고, 마침내 어려운 현실을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됩니다. 이 진리를 방정환 선생님은 꿰뚫은 것이겠지요.
나라의 곳곳을 다녀와서 실은 이야기, 나라의 자랑할 만한 좋은 곳도 이야기로 들려줍니다 그냥 지리의 사실로, 지식을 전달하듯이 썼다면 아이들은 학습으로 생각하고 어른의 뜻을 의심하고 재미나게 읽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방정환 선생님이 전하려는 깊은 뜻을 알지 못했겠지요. '섬 많은 남쪽 나라 - 요만큼 섬이 많은 조선(26년3월, 4권3호)' '조선의 자랑- 남쪽 섬나라를 돌아서(26년4월, 4권4호), 천하 제일 금강산(26년10월, 4권9호), 제주도 이야기(4권12호), 조선 제일 좋은 산·큰 강(30년3월, 8권3호)' '지리교실 - 조선은 어느 곳에 있는가·조선이 있는 곳(28년1월, 6권1호)' 같은 난을 보면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내 나라 땅을 느끼게 하려는 선생님의 뜻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에는 그곳에 다녀와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전하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내 나라 땅에 대한 사랑을 단편의 지식이 아니라 삶으로 느끼게 하려는 뜻이 숨어 있다고 보입니다.
지리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우리 고유의 풍습을 소개하는 난도 있습니다. '정월 대보름 - 약밥의 이야기(27년 1월, 5권 13호)' '가지가지로 그리운 우리들의 옛날 설(29년 1월, 7권 1호)' 같은 난이 그것입니다. 할머니 무릎을 베고 구수한 옛이야기 한 자락 듣듯이 이런 이야기를 읽는 속에서 아이들은 나라와 겨레에 대한 사랑을 알게 모르게 키워 갔을 겁니다. 일일이 다 늘어놓기 어렵지만 과학이나 지식에 관한 이야기도 그 본질을 같이 이해할 수 있게 이야기로 들려줍니다.
이 모든 이야기를 방정환 선생님은 '―습니다' 체로 썼습니다. 이것은 사람을 바로 앞에 두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읽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줍니다. 방정환 선생님이 여러 사람들 앞에서 수백 번도 더 이야기하면서 다듬어진 것을 그대로 글로 쓴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입니다. 마치 옛이야기를 채록해 놓은 것을 읽는 듯합니다. 또, 한편으로 이 '―습니다' 체에서는 어린 동무들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드러나 보입니다. 어린 동무 한 사람 한 사람을 온전한 인격체로 보고 존중하려는 마음이 그대로 글에서는 '―습니다' 문체로 되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이야기 문화의 핵심입니다. 이야기 문화는 듣는 사람과 들려주는 사람이 한 높이, 같은 자리에서 삶을 서로 나누는 문화입니다.
선생님은 일찍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동화가 가져야 할 첫째 요건은 아동들이 잘 알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알기 쉽게 말하면, 여름 일기의 더운 것을 말할 때에 온도 몇 십도나 되게 덥다고 하면 모릅니다. 덥다 덥다 못하여 옷을 벗고 물로 뛰어 들어가도 그래도 덥다고 하면, 아동은 더위를 짐작합니다. … 둘째, 아동에게 유열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동의 마음에 기쁨과 유쾌한 흥을 주는 것이 동화의 생명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교육적 가치 문제는 셋째, 넷째 문제이고, 첫째 기쁨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셋째, 교육적 의미를 가져야 할 것이라고 이렇게 치겠는데…(<동화 작법>, 방정환, 동아일보 1925.1.1, ≪소파 방정환 문학전집≫ 3권 재수록, 문천사, 87∼88쪽)

선생님은 이처럼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주더라도 '아동들이 잘 알 수 있'게 써서, '아동에게 유열을 주'면서 이야기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들려주는 문학이 주는 커다란 힘입니다. 들려주는 문학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옛이야기를 재화할 때도 선생님은 이런 핵심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보기를 들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보기 1>
옛적으 어떤 곳에 나이 많은 영감 할멈이 살고 있었넌디 이 영감 할멈헌티는 아덜이고 딸이고 애기가 없었어요. 그렇게 할머니는 우리는 어찌서 설육이 없넌가, 구렝이라도 하나 나 봤이면 허고 애기 낳기가 소원이였어요. 그렇게 소원 힜었넌디 이 할머니가 애기를 배서 열 달 만에 애기를 났넌디 나놓고 봉게 애기가 사람이 아니고 구렝이를 났어요. 할머니는 구렝이를 나서 방 안에다 둘 수가 없어 뒤안 굴뚝 밑이다 갖다놓고 삿갓을 덮어 씨워놨어요.(<구렁덩덩 신선비>, ≪한국구전설화≫, 전라북도 편, 289쪽, 임석재 엮음, 평민사, 1993)

<보기 2>
옛날 호랑이 담배 먹을 적 일입니다.
꾀 많은 나무꾼 한 사람이 깊은 산 속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길도 없는 나무숲 속에서 크디큰 호랑이를 만났습니다.
며칠이나 주린 듯싶은 무서운 호랑이가 기다리고 있었던 듯이, 그 큰 입을 벌리고 오는 것을 딱 앞으로 맞닥뜨려 놓았으니, 소리를 지르니 소용이 있겠습니까, 달아난다 한들 뛸 수가 있겠습니까. 옴짝달싹을 못하고, 고스란히 잡아먹히게 되었습니다.
악 소리도 못 지르고 그냥 기절해 쓰러질 판인데, 이 나무꾼이 원래 꾀가 많고 능청스런 사람이라, 얼른 지게를 진 채 엎드려 절을 한 번 공손히 하고,
"에구, 형님! 인제야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그려."
하고 손이라도 쥘 듯이 가깝게 다가갔습니다. 호랑이도 형님이란 소리에 어이가 없던지,
"이놈아, 사람놈이 나를 보고 형님이라니, 형님은 무슨 형님이냐?"
합니다.(방정환, <호랑이 형님>, ≪어린이≫, 26년 1월, 4권 1호)

<보기 3>
산밑 마을에 할머니가 여러 마리 집짐승을 기르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뒷골짜기의 호랑이가 밤마다 내려와 할머니의 짐승들을 잡아먹곤 했다.
"할머니, 배고파요. 닭 한 마리만 주셔요."
"안 된다!"
그래도 호랑이는 닭을 잡아갔다.
……
할머니는 장독간 옆에 있는 화로에 꺼진 숯불을 담아 두었다.
부엌에 있는 물통에는 고춧가루를 잔뜩 풀어 두고, 부엌 선반에는 바늘을 잔뜩 꽂은 행주를 두었다.
그리고 문 밖에는 쇠똥을 잔뜩 깔아 두었다.
마당에는 멍석을 깔아 두고 대문간에는 지게를 세워 두었다.(<할머니와 호랑이>, ≪한국전래동화≫, 12∼13쪽, 신현득 글, 예림당, 1994)

<보기 4>
옛날 옛적, 사람이 짐승들과 말하던 그런 옛날, 함경도의 어느 깊은 산골에서 돌쇠라는 총각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한 살림을 꾸려 나가고 있었답니다. 단오 명절도 가까운 어느 날, 돌쇠는 그 날도 지게를 지고 산으로 갔습니다.
수림 속에서는 이름 모를 산새 소리와 짐승의 울부짖음 소리가 이따금 들려 올 뿐, 나무꾼도 포수들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무 한 짐을 거의 다하였을 무렵, 갑자기 큰 바위 뒤에서 늙은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어슬렁어슬렁 돌쇠에게로 다가오고 있지 않겠습니까?(<돌쇠와 지혜 있는 토끼>, ≪남북 어린이가 함께 보는 전래동화 5≫, 11쪽, 손동인·이준연·최인학 엮음, 사계절, 1991)

<보기 5>
옛날 아기를 낳지 못한 부부가 자식 없는 것을 늘 한탄하고 지내다가 갓난아기 하나를 주웠습니다.
누가 내다 버린 아기였습니다. 두 내외는 그 아기를 길러 아들을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래 유모를 구하여 젖을 먹였으나, 아기는 이상하게도 젖을 먹지 않고 어른들이 먹는 밥을 보고 입맛을 다시므로, 밥알을 입에 넣어 주었더니 맛난 듯이 잘 먹었습니다.
그래 젖 먹이기를 그만두고 밥을 먹여 길렀습니다.
아기는 죽순이 자라듯이 무럭무럭 잘 자랐습니다. 두세 달이 지나니 아기는 어느덧 커다란 아이가 되어,
"산에 나무를 하러 가겠으니 지게를 하나 만들어 주세요."
하고 아버지에게 졸라댔습니다.(<네 사람의 장사>, ≪한국전래동화집 6≫, 49쪽, 이원수·손동인 엮음, 창작과비평사, 1980)

<보기 1>은 구전되어 오는 옛이야기를 채록해 놓은 것이고, 2부터 5까지는 재화한 사람이 모두 다른, 글로 정착된 옛이야기입니다.
방정환 선생님이 재화한 옛이야기 ― 보기 2를 보면 입말인 '―습니다' 체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주제를 흐리지 않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많은 인용을 못하지만, 선생님이 재화한 옛이야기는 구수한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보기 3은 옛이야기의 이런 맛을 완전히 죽여 버린 글입니다. '―했다' 체를 쓰면서 들려주는 옛이야기의 맛을 잃어버리게 했을뿐 아니라, 이야기의 속도감도 떨어지는 지리한 전개를 하고 있습니다. 옛이야기는 어린이문학에서 글로 재화할 때 전래동화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창작동화 흉내를 낸, 전래동화라는 이름으로 쓰인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옛이야기의 양식을 파괴하면서 본질까지 흐려 버린 예는 우리 회 회보 ≪동화읽는 어른≫에서 몇 번 다루었습니다(≪동화읽는 어른≫ 94년12월, 31호 - <어떤 것이 좋은 옛이야기인가>, 월요 전래동화연구모임, 오호선 정리 / 95년7월, 38호 - <제대로 된 옛이야기 책을 기다리며>, 심명숙·오호선·이송희 / 97년4월, 47호 - <옛이야기 어떻게 볼까>, 목요 동화비평모임, 김소원·이송희 정리). 보기 3은 이런 예의 대표라 할 수 있습니다. 보기 4·5도 '―습니다' 체로 쓰여 있습니다. 언문일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던 20년∼30년대에 방정환 선생님이 글에서 입말을 살려 '―습니다' 체를 쓴 사실은 높게 평가할 수 있으나, 그 뒤로 60년도 더 지난 1980년대에 옛이야기 재화를 이야기하면서 '―습니다' 체를 무조건 좋게 평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기 대부분의 전래동화가 이런 문체로 재화되었으나, 재화한 사람 저마다의 독특한 문체가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또, 재화자 저마다 '―습니다' 체 아닌 다른 문체를 실험해 보지 못한 한계가 있습니다.
작가의 문체는 작가의 개성입니다. 저마다 다른 개성으로 쓴 글에서 아이들은 훨씬 더 자유로움을 맛볼 수 있습니다. 옛이야기를 재화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입말을 살려 쓰면서 작가의 개성을 살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면에서 입말을 살리는 가운데 재화자의 독특한 문체가 살아난 다음 글들은 90년대 옛이야기 재화의 큰 성과로 보입니다.

<보기 6>
이 사람은 이제 딸이라면 지긋지긋해서 일곱째 딸에겐 목욕도 시키지 않고 비단옷도 입히지 않았어. 목욕에 비단옷이 뭐야. 여름에는 핫바지 저고리를 입혀서 햇볕에다 내다 놨어. 더위 먹어 죽으라고. 겨울에는 삼베 저고리에 삼베 바지를 입혀서 햇빛 없는 응달에 내다 놨어. 얼어죽으라고 말이야.
그런데 그 때마다 하늘에서 하얀 학이 내려와서 이 아이를 돌봐 주는 거야. 여름에는 한쪽으로 아이를 안고, 다른 날개로는 햇빛을 가려 주었어. 부채질도 시원시원하게 해 주고 말이야. 겨울에는 두 날개로 아이를 꼭 안고 따뜻하게 감싸 주었어. 먹을 것도 물어다 먹이고. (<버리데기>, ≪구렁덩덩 신선비≫, 14쪽, 김중철 엮음, 웅진출판, 1996)

<보기 7>
옛날 옛적, 한 어머니가 예쁜 딸을 낳았지. 그런데, 딸을 일곱 살 먹도록 키워 놓고 그만 죽고 말았대. 그래서 계모가 들어왔는데, 이 계모한테는 의붓딸이 눈엣가시란 말이야. 그러니 그저 밤낮으로 구박이지.
그런데 글쎄 일이 안 되느라고 그런지, 얼마 안 있어 아버지마저 죽고 말았어. 이제 계모는 저 세상을 만났다고 제 마음대로 하는 거지. 눈엣가시 같은 의붓딸이 미워서 어떻게든 쫓아 내려고 해. 하루는 딸을 불러 놓고,
"지금 당장 산에 가서 참나물 한 소쿠리 뜯어 오너라. 그거 못 해 오면 집에 들어올 생각도 하지 말아."
하고 내쫓는구나. 눈이 펄펄 오는 한겨울인데 말이야.(서정오, <버들잎도령>, 95쪽, ≪두꺼비 신랑≫, 도서출판 보리, 1997)

위 두 이야기에서는 살아 있는 입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습니다' 체에서 한 걸음 나아간 '―어' 체는 한결 구술한 옛이야기에 가까운 느낌을 줍니다. 방정환 선생님이 20∼30년대에 힘들여 개척해 놓은 세계가 90년대에 와서야 비로소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 있는 이야기를 듣는 듯한 글을 보면서, 아이들은 이야기 문화의 참 맛을 글에서도 맛볼 수 있을 테지요. 물론 이 글대로 아이들한테 이야기를 들려 줄 때는 여전히 어색한 데가 있습니다. 말과 글의 엄연한 차이 때문에 온전히 이야기를 하듯이 글을 쓸 수는 없겠지요. 다만, 그 틈을 메우려 애쓰는 작가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방정환 선생님은 그 속에서 살아 숨쉬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 우리는 많은 책을 권합니다. 알게 모르게 지식을 강요하고, 학습을 강요합니다. 이런 뜻에서 볼 때 방정환 선생님이 세상의 많은 진리와 현상을 이야기로 들려주어 아이들이 재미있고 즐겁게 읽기를 바란 마음은 이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진리라 생각합니다. 방정환 선생님이 남겨 놓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들려주는 문학의 장르가 오늘날 어린이문학의 한 장르로 정착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래서 들려주는 문학의 꽃, 겨레의 삶과 마음이 온전히 담긴 우리 옛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제대로 들려주고 싶습니다. (정리 : 이송희)

3. 어린이, 우리 역사와 함께하는 방정환 선생님

우리는 흔히 '방정환 선생님의 작품'하면 《사랑의 선물 1, 2》(신구미디어)를 떠올리곤 합니다. 또 어떤 작품이 있지 하고 생각해 봐도 별로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출판 시장에서 방정환 선생님의 작품집은 찾아 보기 어려운게 현실입니다. 방정환 선생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최근 출판된 《칠칠단의 비밀》(사계절) 정도가 전부가 아닐까 여겨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방정환 선생님의 작품 세계에 대해 별로 좋지 않은 시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작품은 별로 보지도 못하고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가장 큰 까닭은 우리 나라 어린이 문학사를 공부할 때 누구나 한번쯤 보는 책, 《우리동화 바로 읽기》(이재복/한길사)의 영향이라 생각됩니다. 우리 나라 어린이 문학사를 연대순으로 작가별로 정리해 놓은 이 책의 첫 등장인물은 당연히 방정환 선생님입니다. 문제는 이 책에서 우리 문학사의 첫머리에 나오는 방정환 선생님에 대한 평가를 그리 좋지 않게 내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밥 대신 꽃을 선택한 낭만주의자'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방정환 선생님에 대한 평가는 선생님의 동화 구연 능력 외에는 별로 높이 평가되고 있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런 시각은 인물 이야기《뚱보 방정환 선생님 이야기》(이재복/지식산업사)로 그대로 이어집니다.
그러고 보니, 우린 방정환 선생님 작품을 통한 평가보다는 다른 사람의 평가만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던 셈입니다. 이제, 방정환 선생님에 대한 평가는 방정환 선생님의 작품과 그 분의 생애를 통해서 다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먼저 방정환 선생님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는 《사랑의 선물》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현재의 《사랑의 선물》과는 다른 책임을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 생전에 출판된 유일한 단행본인 《사랑의 선물》은 1922년 개벽사에서 간행된 책으로 안델센 동화, 그림동화, 아라비안나이트 등 세계 명작동화 10가지를 번안하여 만들어 진 것입니다. 반면 지금 우리가 보는《사랑의 선물》은 그 이후 발표된 많은 작품을 포함한 책이지요.
방정환 선생님은 《사랑의 선물》책머리에서 "학대받고 짓밟히고, 차고 어두운 속에서 우리처럼 또 자라는 불쌍한 영(靈)을 위하여 그윽히 동정하고 아끼는 사랑의 첫 선물로 나는 이 책을 짰습니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랑의 선물》당시 대호평을 받았지만, 창작이 아니라 번안 작품이었기 때문에 '방정환 작품=번안'이라는 인상을 깊이 남긴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방정환 선생님의 글을 유심히 살펴보면 방정환 선생님의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린이에게서 기쁨을 빼앗고, 어린이 얼굴에다 슬픈 빛을 지어 주는 사람이 있다 하면, 그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없을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죄인은 없을 것이다.
어린이의 기쁨을 상해 주어서는 못쓴다! 그러할 권리도 없고, 그러할 자격도 없건마는……. 무지한 조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어린이들의 얼굴에 슬픈 빛을 지어 주었느냐?
어린이들의 기쁨을 찾아 주어야 한다.
어린이들의 기쁨을 찾아 주어야 한다.
어린이는 아래의 세 가지 세상에서 온통 것을 미화시킨다.
이야기 세상 - 노래의 세상 - 그림의 세상.(<어린이 찬미> : 《신여성》제2권 제6호, 1924년 6월)

아동 자신이 동화를 구하는 것은 결코 지식을 구함도 아니요 수양을 구하 기 위함도 아니고 거의 본능적인 자연의 욕구이다. 생아(生兒)가 모유를 욕구하는 것과 같이 아동은 동화를 욕구하는 것이다. 모유가 유아의 생명을 기르는 유일한 식물인 것과 똑같이 동화는 아동에게 가장 귀중한 정신적 식물인 것이다.
아직 우리에게 동화집 몇 권이나 또 동화가 잡지에 게재된다 해야 대개 외국 동화의 역(譯) 뿐이고, 우리 동화로의 창작이 보이지 않는 것은 좀 섭섭한 일이나 그렇다고 낙심할 것은 없는 것이다. 다른 문학과 같이 동화도 한때의 수입기는 필연으로 있을 것이고 또 처음으로 괭이를 잡은 우리는 아직 창작에 급급하는 이보다도 일면으로는 우리의 고래(古來) 동화를 캐어내고 일면으로는 외국 동화를 수입하여 동화의 세상을 넓혀가고 재료를 풍부하게 하기에 노력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기도 하다.(<새로 개척되는 동화에 대하여(이상 <새로 개척되는 동화에 대하여> : 《개벽》 제4권 제1호,1923년 1월)

어떠한 글이 크게 감동을 주기는 주었는데 그것이 남의 나라에 있는 것을 번역한 것이라고 하면 그 감동이 약해지는 까닭으로 어린 사람 잡지에는 번역이라고 아니하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독자 담화실> : 《어린이》제5권 제3호, 1927년 3월)

그런고로 동화가 가져야 할 첫째 요건은 아이들이 잘 알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운데 줄임… 그 다음에 동화가 가질 요건은 아동에게 유열(愉悅)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동의 마음에 기쁨과 유쾌한 흥을 주는 것이 동화의 생명이라 하여도 좋을 것입니다. 교육적 가치 문제는 셋째 넷째 문제고 첫째 기쁨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동화작법>(동화 짓는 이에게) :  동아일보, 1925년 1월 1일자

방정환 선생님의 동화관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방정환 선생님은 동화란 어린이들이 본능적인 기쁨과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이어야 하며, 철저하게 어린이의 입장에서 쓰여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외국 동화의 수입은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며, 창작에 급급하는 일보다는 동화의 세계를 넓혀나가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사랑의 선물》이 출판된 당시 조선에서 동화집이라고 발간된 것은 한석원 씨의 《눈꽃》과 오천석 씨의 《금방울》, 《사랑의 선물》이 유일한 상태였던 점을 생각한다면, 비록 번안물이지만 조선의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귀한 책이었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정환 선생님의 생각은 《어린이》지의 편집 과정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그래서 많은 번안 작품들이 실립니다. 번안 작품이 많이 실렸던 이유는 또 있습니다. 당시는 조선의 해방을 상징하는 우리 이야기는 싣기가 어려웠지만, 비슷한 내용이라도 외국 동화는 번안하여 싣기가 쉬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지에 실린 번안 작품은 방정환 선생님의 작품도 있지만, 방정환 선생님 사후 《어린이》지 편집을 맡았던 미소 이정호의 작품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외국 동화지만 만일 외국 동화라는 사실을 모르고 읽는다면 우리 이야기가 아닐까 여겨질만큼 자연스럽게 우리의 모습이 잘 녹아있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 방정환 선생님의 작품 <시골쥐의 서울 구경>은 이야기 맛이 남다릅니다.

"시골쥐가 서울 구경을 올러왓슴니다. 처음 길이라 허둥허둥하면서 짐차를 두 번 세 번이나 갈나타고 간신히 서울까지 왓슴니다."

처음 시작부터 시골쥐의 입장에서 읽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지요. 이솝 우화 <서울쥐 시골쥐>에서 시골쥐가 서울 구경을 왔다가 시골이 더 좋다며 되돌아가는 것과 기본 구조는 같지만 시골쥐가 다시 시골로 내려간 까닭은 사뭇 다릅니다. <서울쥐 시골쥐>의 시골쥐가 다시 시골로 내려가는 것은 '조마조마하며 맛난 사람 음식을 훔쳐먹는 것보다는 마음놓고 먹을 것이 있는 시골에서 편히 지내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시골쥐의 서울 구경>에서 시골쥐는 '서울이 무서워'서 시골로 내려갑니다. 왜 그럴까요? 서울 구경을 하고 싶어 어렵게 올라왔지만, 서울은 마냥 신기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골쥐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도 여기 저기에 놓여있는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다보면 왠지 내가 시골쥐가 되어 마음이 부풀기도 하다 불안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내가 마치 당시 서울에서 불안해하며 하루 하루 지내는 민중의 처지에 놓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한강 철교, 자동차, 전차, 고양이도 감히 오지 못하는 쇠로 된 양옥집(우체통)은 당시 변해가는 서울의 모습이며, 이런 모습은 호기심과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들 서울 구경을 나서는 것이지요. 하지만 서울은 행복하기만 한 곳은 아닙니다. 굶어죽지 않으려면 바쁘게 뛰어 다녀야만 하고, 신문에서는 흑사병이 유행하니 쥐들을(여기서 쥐들은 민중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모두 잡아 죽여야 한다고 하고, 까닭도 모르는채 손가방(사실은 우체부 가방)에 갇히기도 하고 합니다.
시골쥐는 간신히 도망쳐 생각합니다.

'아아, 서울은 무섭다. 무서운 곳이다! 서울 쥐들은 친절하지만 양옥집도 무섭고, 흑사병도 무섭다. 에엣, 가방 구멍으로 내다보고 서울 구경을 꽤 한 셈이니, 인제는 어서 다라나야겟다. 다라나야겟다.'

어차피 현대 문명은 받아들이고 알아야 할 부분이지만,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서울의 모습은 민중들에게 위협적인 것이 될 수도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아닐었을까 여겨집니다.
너무 과도한 해석일까요? 《우리 동화 바로 읽기》에서는 방정환 선생님이 번안하거나 창작한 이야기에서 우리 역사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방정환 선생님은 우리의 처지에 빗대어 외국 동화를 번안하는 일뿐 아니라 역사, 인물 이야기에서도 우리의 처지와 비슷한 이야기나 우리 나라 인물 가운데도 나라를 지키는데 힘쓴 장군들의 이야기나 조선인의 긍지를 심어주는 인물이 유난히 많은 것을 보면 그 누구보다도 역사에 대한 고민이 절실했었다고 여겨집니다. 때문에 이런 해석이 무모하기만 한 건 아닐 거라 확신합니다.
이러한 해석은 방정환 선생님의 어린이 운동은 독립운동의 한 방법이었다는 판단에서 가능한 것이기도 합니다. 아니, 방정환 선생님에게 어린이 운동과 독립운동은 서로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입니다.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아동 교육도 아동이 스스로의 자율성에 따라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은 천도교의 사상과도 관계가 깊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천도교의 기본 사상은 인내천(人乃天)입니다. 즉, 인간 평등 사상이지요. 이런 사상은 여성해방, 아동존중, 노비해방과 같이 지배계층으로부터 억눌렀던 민중들을 해방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아동을 하나의 인격체로 본 것은 바로 천도교 사상이었던 것입니다.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은 《내수도문》에서 "어린 아이를 때리지 마라.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니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방정환 선생님의 아동 존중 사상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 것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방정환 선생님은 손병희 선생님의 사위입니다. 방정환 선생님이 종교 활동의 하나로 어린이 운동을 실천한 분은 아니지만, 그 영향 아래서 활동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천도교는 3.1 운동을 주도한 세력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3.1운동에 대한 평가를 다룰 수는 없지만, 3.1 운동 이후 일제는 조선에 대한 지배 방식에 변화를 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무단 정치가 문화 정치로 옷을 갈아입은 것이지요. 물론 일제의 조선 지배의 속 내용이야 전혀 바뀌지 않았지만, 통치 형태의 변화는 당연히 독립운동의 방법에도 변화를 주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언론, 출판 매체를 통한 민중의 계몽을 독립운동의 한 방법으로 인식하고 실천하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천도교도 《개벽》지를 통한 출판운동과 함께 농촌운동과 청년운동을 중심으로 활동을 하게 됩니다. 방정환 선생님은 그 한가운데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19년 말쯤 일본 토오요오 대학에 유학하며, '천도교 청년회' 동경지부 일을 맡고 있던 방정환 선생님은 1920년 6월 《개벽》지의 창간과 함께 《개벽》지 동경특파원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미 이때부터 《개벽》을 비롯해 여러 잡지에 '어린이'에 대한 글들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방정환 선생님은 천도교의 청년운동과 같은 맥락으로 소년운동을 생각하게 되고 이러한 생각이《어린이》지의 편집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청년운동이 소년운동으로 그 영역을 넓히게 된 것은 무척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소년 운동은 근본적인 항일투사 육성책이 됨과 동시에 일제의 감시를 덜 받을 수 있다는 현실적인 계산'(《소파 방정환의 아동교육운동과 사상》, 안경사, 학지사,33-34쪽)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일제의 부당한 간섭과 억압은 어린이의 성장과 발달을 방해하는 요소였기에 방정환 선생님의 아동존중 사상에서 볼 때 반드시 없어져야 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독립운동과 어린이 운동을 하나로 생각한 방정환 선생님이지만 《어린이》지에는 당시 계몽주의자들처럼 일방적인 교훈과 계몽을 강요하는 글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방정환 선생님이 교훈담이나 수신담은 어린이의 성장을 방해한다고 생각하여《어린이》지를 편집할 때 뺏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린이》지에는 과학지식이나 전기문처럼 교훈이 담긴 이야기도 있고, 어린이 독본처럼 도덕 교과서 같은 교훈을 담고 내용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글들을 가만 들여다 보면 어린이들이 재미있게 읽다보면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감동을 받아, 자신도 모르게 알게 될만큼 재미있게 들려주는 이야기로 써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린이에게 주는 동화(이야기)는 어린이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어야 하고, 교육적 가치는 세 번째(<동화작법>(동화짓는 이에게)에서 재인용)라고 생각하던 방정환 선생님이고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여기서 잠깐 《어린이》지에 실린 '어린이 독본'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어린이 독본'은 모두 19편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은 제 20과이지만, 제5과는 현재 《어린이》지 영인본 가운데 빠진 것이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활자를 잘못 심었기 때문인지는 모르나 빠져 있고, 대신 제7과가 <어린이의 노래>, <뛰어난 신의>가 두 번 계속 실렸다. 그리고 제12과는 검열로 삭제당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어린이 독본'의 내용을 살펴보는 것은, 《어린이》지에는 이미 앞서 실렸던 이야기가 다시 '어린이 독본'으로 재편집되어 수록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반복해 싣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편집자인 방정환 선생님이 그 내용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게다가 '어린이 독본'은 연재되자마자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각 학교에서는 조선어 시간에 독본 교재로 널리 사용하였고, 학생들도 "공부도 되지만 우리 조선 소년들에게 좋은 정신을 넣어준다"고 하여 널리 읽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린이 독본'의 내용은 옛이야기도 있고, 번역글도 있고, 일화나 일기글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통된 주제를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일제 하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보여주는 것(제1과 '한자 앞서라', 제3과 '두 가지 마음성', 제13과 '적은 힘도 합치면!')이고, 둘째는 참된 희생과 동정, 마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제2과 '작은 용사', 제4과 '참된 동정', 제6과 '너그러운 마음' 제11과 '동정')입니다. 셋째는 믿음과 우정에 대한 내용입니다.(제7과 '뛰여난 신의', 제10과 '고아형제',. 제16과 '형제', 제19과 '동모의 정')
이밖에 다른 내용도 있지만, 교육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 내용을 어린이에게 강요하지 않고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게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면, 그러다보니 지금의 눈으로 볼 때 조금은 감상적으로 보여지기도 하는데, 이는 당시 조선 어린이들의 애절한 마음을 우리가 피부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야말로 당시에 필요한 '독본'이라는 이야기지요.
이제 방정환 선생님을 '밥 대신 꽃을 선택한 낭만주의자'라든가 '동심 천사주의자'로 잘못된 선입견을 갖지 않았으면 합니다. 동심이란 현실과 대립하는 개념도 아니고, 초기 낭만주의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천재론'이나 '영감론' 따위를 가리키는 사조도 아닙니다. 방정환 선생님이 말하는 '영원한 아동성'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오히려 현실은 변화시켜야 할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아아 우리는 항상 시시로 천진난만하던 예 고원-아동의 세계에 돌아가 마음의 순결을 빌지 아니하면 아니된다"는 방정환 선생님의 말이 "모두가 순결한 동심으로 돌아가 역사의 횡포에 순응하자는 것"이며 "방정환 동화론의 실체는 일제의 탄압 아래 신음하던 식민지 시대에 어떤 민족의식도 용납하지 않고 오히려 민족해방 의지를 약화시키는 '극단적인 유아성'(《역사와 문학적 진실》, 권승긍, 살림터,<현실적인 동화론과 삶의 동화운동> 314쪽)인 것이다"라는 평가는 재평가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들어 이재복 선생님이 새롭게 방정환 선생님을 평가한 글(《동화읽는어른》1998년 5,6월호 <방정환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자>)은 정말 반가운 일입니다. 한편 방정환 선생님의 작품집으로 너무 유명한 《사랑의 선물》에 허삼봉의 작품 <삼부자 곰잡기>가 방정환 선생님 작품으로 들어가 있는 게 걸립니다. <미련이 나라>도 최영주의 작품인 것 같고요. 허삼봉은 지금까지 방정환 선생님의 또다른 필명으로 알려져 왔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미 허삼봉이 다른 인물이라는 것이 밝혀졌고(《동화읽는어른》1998년 5,6월호 <방정환 동화에 대하여>, 심명숙, 56쪽 )하지, 방정환 선생님의 작품집도 다시 제대로 된 것으로 나왔으면 합니다. 《우리 동화 바로 읽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제 어린이를 역사에 당당히 내세운 방정환 선생님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합니다.(정리 : 오진원)

 

-> 계속
 





이    름 내    용 비밀번호
     
 

  윗   글   방정환 이야기의 맛과 힘(2) [1]  
  아랫글   방정환 - 어린이 세상을 꿈꾸다  



Copyright 1999-2017 Zeroboard / skin by Z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