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선생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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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제 목    [편지글] 권정생 선생님께 -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를 읽고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보리)

 

권정생 선생님께.

선생님 잘 지내시지요?
어느새 5월이네요.
올해는 너무 정신없이 지나간 탓인지 5월이 마치 새 출발을 다짐하는 달처럼 느껴져요. 새해를 맞이하는 1월이나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처럼 말이에요.
올 초부터 코로나 바이러스가 정신없이 몰아치면서 아이들이 학교도 가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거든요. 입학을 앞둔 아이들은 5월이 되도록 학교 구경도 못하고, 새 학년에 올라가는 아이들은 새로운 친구와 선생님을 만날 수가 없었어요. 6월이나 돼야 모든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아, 물론 4월 중순쯤부터 ‘온라인개학’이라는 게 실시되기는 했어요. 학교에 가지 못하는 대신 인터넷을 통해 수업을 듣는 거지요. 덕분에 한바탕 큰 난리가 벌어지기도 했어요. 컴퓨터나 인터넷이 익숙한 아이들은 조금 낫지만, 저학년 아이들과 컴퓨터나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에겐 온라인 수업 자체가 하나의 도전이었으니까요.
저희 아이가 다니는 대학은 아예 1학기 전체가 온라인 강의로 이루어진대요. 또래들과 달리 컴퓨터를 잘 못 하는 저희 아이도 온라인 강의 때문에 한참을 실랑이해야 했어요.
“나는 스마트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강제로 스마트해지고 있어.”
저희 아이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과 선생님들이 강제로 스마트해지고 있는 중이에요.
이렇게 오랫동안 학교를 가지 못했던 때가 있었을까 싶어요.
6.25 때도 아이들은 학교를 제대로 갈 수 없었겠죠?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피난도 가야했으니까요. 그래도 부산이나 대구에서는 피난학교가 세워져 전쟁 중에도 수업을 이어가기도 했다지요?
이번 코로나 사태 속에서 가슴 아픈 6. 25를 떠올리게 되다니! 왠지 마음이 씁쓸하기만 해요.

얼마전 오랜만에 그림책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를 다시 봤어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이 책은 절 여러 번 깜짝 놀라게 한 책이었거든요.
처음 놀랐던 이유는 이 작품이 《바닷가 아이들》에 실려 있는 작품이었다는 것이었어요. 사실 전 《바닷가 아이들》을 여러 번 읽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작품은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어요. ‘다른 작품에 관심이 쏠렸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해 보지만, 그렇다고 위안이 되지는 않아요. 그나마 《바닷가 아이들》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작품을 목차에 표시를 해놨는데, 이 작품도 표시가 되어 있다는 것에 위안을 느끼기로 했어요. 단편모음집에 묶여 있어 눈에 잘 띄지 않던 작품을 그림책으로 다시 발견할 수 있게 되서 정말 다행이에요.

저는 이 책을 한 글자 한 글자 소리를 내어 읽어봤어요. 이 책을 처음 읽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되살아났지요. 처음에 저는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가 어디 캠핑이라도 간 건가 했어요. 옷차림이 캠핑하고는 거리가 멀었지만, 뭐 캠핑이란 말을 쓰지 않던 수십 년 전이라면 이렇게 편한 옷으로 산에서 지낼 수도 있겠다 싶었지요. 저도 모르게 두 사람이 조곤조곤 나누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됐어요. 그리고 곧 알게 됐지요. 제가 생각했던 게 아니라는 것을요. 고요한 달밤에 부스스 일어나 이야기를 나누던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는 이미 삼십 년 전인 6. 25 와중에 이곳 치악산에서 쓰러져 죽어갔던 영혼이었어요.
아, 이렇게 안타깝게 죽은 두 사람의 영혼만 등장하는 이야기가 또 있을까요? 제가 못 봤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마 이 작품이 유일무이한 것 같아요. 게다가 인민군과 북에서 피난 내려오던 아이라니요! 이 작품이 쓰인 게 1980년대라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어요. 1980년대는 군사독재 정권의 무자비한 탄압이 이루어지던 때였지요. 바른 말 하는 사람들은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하기도 했던 때였지요. 그런 무시무시한 때에 인민군을 내세워 6. 25 이야기를 풀어내시다니요. 선생님께선 참으로 겁도 없다 싶었어요. 잡혀가지 않으신 게 정말 다행이다 싶었어요.

저는 곰이의 사연도 안타깝지만 오푼돌이 아저씨의 이야기가 더 가슴에 와 닿았어요.
“인민을 위해 싸운 건데, 죽은 건 모두가 가엾은 인민들뿐이었어.”
“마찬가지로 나라를 위해 싸운 국군도 제 나라만 쑥밭으로 만들었고…….”
오푼돌이 아저씨 모습에서 몽실 언니가 겹쳐 보이는 건 왜일까요?참, 그러고 보니 《몽실 언니》가 발표된 것도 1984년이네요. 사복경찰이 대학에 대놓고 드나들던 시대, 툭하면 국가보안법으로 민주화를 외치던 사람들이 끌려가던 시대, 의문사가 끊이지 않던 시대…….

제가 놀랐던 건 또 있어요.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을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통해 풀어내신 부분이에요. 한반도를 상징하는 할머니, 러시아와 미국을 상징하는 두 호랑이, 남과 북을 상징하는 남매. 정말이지 당시 우리나라 상황과 딱 맞아떨어지면서도 우리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어요.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어린 시절부터 제가 알고 있던 몇 안 되는 옛이야기 가운데 하나예요. 그리고 옛이야기를 공부하며 최소한 일 년에 한 번은 꼬박꼬박 다시 읽는 이야기지요. 하지만 이렇게 현재 우리의 역사적 상황과 맞물려 살펴보진 못했어요.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우리나라 대표 옛이야기답게 다양한 상징으로 읽을 수 있는 이야기지요. 또 끊임없이 새롭게 변주되며 새로운 이야기로 재창작되기도 하고요.
옛이야기모임 팥죽할머니에서도 올해 우리나라 대표 옛이야기를 다시 읽어보기로 하면서 첫 번째로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보고 있어요. 선생님이 보여주신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세계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달밤에 일어나 밤새 이야기를 나누던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는 새벽이 다가오자 아까 일어났던 그 장소로 가 쓰러지듯 누워요. 마치 아무 일도 없던 듯이. 제가 아무리 치악산 골짜기를 헤맨들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를 만나지는 못하겠지요. 하지만 그래도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를 찾아 치악산을 헤매고만 싶어져요.
선생님은 이따금 먼 곳에서 호랑이에게 잡혀간 오누이의 부르는 소리가 애끓게 들려온다고 하셨지만 전 구슬픈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들이는 것 같아요.
“소쩍, 소쩍, 소쩍다…….”
소쩍새의 슬픈 전설이 떠올라요. 며느리가 밥 먹는 것마저 못마땅해 하던 못된 시어머니가 며느리가 밥을 못 먹게 하려고 솥을 작게 만들었다지요. 식구들 밥을 다 푸고 나면 밥이 모자라서 며느리는 밥을 굶을 수밖에 없었고, 점점 여위어가던 며느리는 결국 피를 토하며 죽고 말았지요. 이때 며느리가 피를 토한 자리에서는 철쭉이 피어났고, 며느리는 새로 변해 밤마다 시어머니 집 앞 소나무에 찾아와 "솥 적다, 솥 적다."하며 구슬피 울었다고 하지요.
아마 치악산의 소쩍새도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는 것이겠지요?

선생님,
언젠가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가 조곤조곤 나누는 이야기의 내용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옛날의 슬픈 이야기를 아주 잊을 수는 없겠지만, 남과 북이 하나 된 새로운 세상에서 추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날이 언젠가 꼭 오길 함께 빌어주세요.

2020년 5월 6일 맑은 날.

오진원 드림.


이 글은 2020년 권정생 선생님 13주기를 추모하며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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