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선생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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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제 목    [편지글] 권정생 선생님께 -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를 읽고

권정생 선생님께.

선생님! 

하늘나라에서 하느님이랑 예수님이랑 잘 지내고 계신가요?
네? 하늘나라에 하느님이랑 예수님은 안 계시다고요?
…….
아, 그러네요. 하느님이랑 예수님은 통일이 될 때까지 이 세상에 살기로 하셨으니, 아직은 여기에 계시겠네요.

예수님은 그럭저럭 잘 버티시지만 하느님은 무척 힘들어하셨던 것 같은데 괜찮으실지 모르겠어요. 아마 이렇게 오랜 기간 여기에 머무르게 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도 못 하셨을 텐데 말이에요. 그래도 씩씩하고 정 많은 과천댁 할머니랑 공주님이 함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어요.
정말 과천댁 할머니랑 공주님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과천댁 할머니는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만났을까요? 2000년 이후에 여러 번 남북이산가족상봉의 기회가 있긴 했지만 아직도 이산가족상봉의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보니 과천댁 할머니가 걱정이 돼요. 연세도 많으신데 그 꿈을 이루지 못하시면 어쩌나 싶어서요.

공주님도 잘 지내겠죠? 이젠 어엿한 사회인이 됐겠네요. 어쩌면 결혼을 했을 수도 있겠고요. 어린 나이에 가족도 없이 혼자서 지냈으니 아주 행복한 가정을 꾸렸으면 좋겠어요.
그러고 보니 하느님이랑 예수님은 여기서도 나름 행복하셨던 것 같아요. 혼자가 아니라 두 분이 함께 서로 의지를 하며 지내셨으니까요. 물론 나중엔 과천댁 할머니랑 공주님까지 모두 한 가족이 되었지만요.
세상을 살아가다 보니 서로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세상을 살아갈 힘을 주니까요. 어려운 일이 많으면 많을수록 의지할 사람이 더 많으면 좋겠지요. 내 곁에 가까이 있는 사람이면 더 좋겠고요.
저요~, 실은 하느님이 아직 여기서 저와 같이 지내고 계시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좋아요. 제가 힘들 때 기대서 투덜대며 의지할 믿음직한 사람(?)과 함께 사는 거잖아요.
물론 여기에 함정은 있지요. 과천댁 할머니나 공주님이 하느님의 존재를 몰랐던 것처럼 저 역시도 누가 하느님인지 모르니까요. 게다가 하느님이 하늘에서는 대단한 분인지는 몰라도 여기서 사시는 모습을 보니 너무도 익숙한 모습이잖아요. 조금은 소심한 듯 싶기도 하고, 우리처럼 투정도 부리고, 그러면서 정의감도 있고, 다른 사람의 아픔에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혹시 하느님이 분신술을 쓰고 계신 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주위엔 나쁜 사람들도 참 많지만 하느님 같은 분도 참 많거든요. 제 주변에 있는 사람만 떠올려 봐도 이 사람도 하느님 같은 면이 있고, 저 사람도 하느님 같은 면이 있고……, 책에 나오는 과천댁 할머니나 공주님도 마찬가지고요.
만약 분신술이 아니라면……, 불교에서 ‘누구나 마음에 부처님이 있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아요. 그렇지 않다면 주변에 하느님으로 의심되는(?) 숱한 사람들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아무튼 전 하느님이 여기서 우리와 함께 사셔서 참 좋아요. 하느님이 여전히 여기에 계시다는 건 아직 우리나라가 행복하지 못하다는 뜻이겠지만, 그래도 함께 사는 게 좋아요. 함께 부대끼면 살면서 의지하고 힘을 낼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선생님, 혹시 하늘나라에서 심심하시더라도 하느님은 계속 이곳에 계시도록 양보해 주세요.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나라가 통일이 될 때까지만이라도요.

아이고, 1년 만에 드리는 편지에 선생님 생각은 안 하고 제 이야기만 계속했네요. 너무 섭섭해 하지는 마세요. 그리고 가능하시다면 선생님도 잠깐이라도 하느님처럼 몰래 이곳으로 내려와 보시면 좋겠어요. 제가 선생님을 못 알아볼 확률은 99.9%이지만 혹시라도 알아보게 되더라도 모른 척 해 드릴게요. 선생님만 눈치 챌 수 있도록 살짝 눈만 찡긋하고 말이에요.

그럼,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2016년 5월 4일

오진원 드림

 


이 글은 2016년 5월 11일 똘배아동문학회에서 주최한 권정생 9주기 추모제 발표 글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해마다 권정생 선생님의 책 가운데 한 권을 골라서 읽고 글을 써와서 발표하는 자리를 갖습니다 . 올해 읽은 책은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산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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