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선생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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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제 목    [편지글] 똑똑한 권정생 선생님께
똑똑한 권정생 선생님께.

선생님. 잘 지내고 계시죠?
선생님께 1년 만에 다시 편지를 쓰네요. 그렇다고 때가 되서 형식적으로 쓰는 편지는 아니랍니다. 알고 계시죠?
전 요즘 선생님이 쓰신 옛날이야기를 보며 선생님 생각을 아주 많이 하고 있어요. 선생님이 쓰신 옛날이야기를 읽다 보면 옛날이야기를 어떻게 새로 써야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건 절대 아부가 아니에요. 진짜로 제가 옛날이야기를 공부하면서 느낀 거예요.
그 중에서도 지난 해 나온 《똑똑한 양반》을 벌써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몰라요. ‘새끼 서 발’로 널리 알려진 이 이야기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제가 곱씹던 이야기에요. 새끼 서 발이 몇 번의 교환을 거쳐서 예쁜 색시가 되는 이야기는 매력이 넘쳤지만, 중간에 죽은 처녀가 산 색시로 바뀌는 장면은 자꾸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에요. 이 고민을 어느 정도 풀 수 있었던 건 저희 아이 덕분이었어요. 아이는 여섯 살 무렵 이 이야기를 참 좋아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엄마, 식물이 죽으면 그 씨앗이 땅에 묻혀서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죽은 처녀도 산 처녀가 된 거지?”
하고 말하는 거예요.
아이의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이 이야기에 대한 고민이 해결되는 것 같았어요.
게으름뱅이 총각이 가지고 있던 새끼 서발. 바로 거기에 해답이 있었던 것 같아요. 새끼를 꼬는 재료는 바로 벼지요. 죽은 처녀가 예쁜 처녀로 바뀌는 건 벼 이삭이 땅에 묻혀 새로운 알곡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짚이라는 것 역시도 벼로서는 생명이 다한 거지만 새끼를 꼬는 재료인 짚은 새로운 생명을 찾은 거고요.
그리스 신화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어요. 페르세포네가 하데스에게 끌려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에요. 하데스가 있는 곳은 저승이에요. 페르세포네는 죽었다 다시 살아난 거지요. 그리고 그건 바로 씨앗이 땅속에서 지상으로 움터 오르는 걸 뜻하지요.
그래서 저는 이 이야기에는 농사의 비밀이 숨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에 총각이 비단장수에게 냈던 수수께끼인 '새끼 서 발, 항아리, 쌀 한 자루, 죽은 당나귀, 산 당나귀, 죽은 처녀, 예쁜 처녀가 과연 무엇일까?'하는 것 역시 농사의 비밀에 대한 수수께끼라고 생각했고요. 그러니 농사일과는 상관없는 비단장수는 그 수수께끼의 비밀을 알아낼 수가 없었지요.
그런데 말이에요,
선생님이 쓰신 <똑똑한 양반>을 읽으며 조금 생각이 바뀌게 됐어요. 아니, 바뀌었다기 보다는 좀더 확장이 된 것 같아요.
먼저 저는 선생님이 이 이야기의 제목을 <똑똑한 양반>이라고 한 까닭이 참 궁금했어요. 보통 ‘새끼 서 발’이라는 제목이 널리 알려졌는데 굳이 이 제목을 안 쓰고 <똑똑한 양반>으로 쓰신 건 뭔가 중요한 까닭이 있을 것 같았어요. 물론 이야기가 옛이야기와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말이에요.
이재복 선생님은 이 책의 해설에서 요즘 너무 바쁘게 살아가는 어린이들에게 옛이야기 속 게으름뱅이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말씀하셨어요.

“가만히 좀 있어 봐요.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빈둥빈둥 노는 것 같아도 내 마음속에는 아주 많은 꾀가 들어 있어요. 날 무시하지 말아요. 느긋하게 생각하며 살 수 있게 너무 다그치지 말고 기다려 주세요.”

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달라요. 이 게으름뱅이 총각이 가만 보면 참으로 똑똑해요.
게으름뱅이 총각이 처음 새끼 서 발을 꼰 건 자기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었지요. 아버지가 볏짚을 가져다 주고서 밤새 새끼를 꼬라고 시켜서 꼰 거지요. 하지만 총각은 새끼를 서 발만 꼬고는 자 버려요. 결국 게으름뱅이 총각은 새끼 서 발만 가지고 집에서 쫓겨나고 말아요.
그런데 막상 집밖에 나온 게으름뱅이 총각은 아주 똑똑해요. 모든 일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요. 집에서는 게으름뱅이였던 총각이 사실은 이렇게 똑똑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요.
깨진 물동이를 버리러 가는 사람을 만나자 새끼 서 발과 바꾸자고 해서 바꾸고,
깨진 물동이는 감쪽같이 붙여 놓았다가 우물에 물을 길러 온 아가씨가 건드려 깨져 버리게 해요. 결국 아가씨는 자기가 갖고 있던 물동이를 대신 주죠.
물동이는 죽은 개와 바꾸고요,
죽은 개는 산 개와 바꿔요.
산 개는 죽은 말과 바꾸고,
죽은 말은 산 말로 바꾸죠.
산 말은 죽은 처자와 바꾸고,
죽은 처자는 처음 물동이를 바꾸었던 우물가의 그 아가씨로 바꾸어요.
이 모든 것이 우연히 되는 법이 없어요. 아버지는 아들이 게으름뱅이인 줄 알았지만 실은 얄미울 정도로 똑똑한 아들이었어요.
생명이 없던 짚은 새끼 서 발로 다시 태어났고,
깨진 물동이는 멀쩡한 물동이로 다시 태어나요.
마치 모든 것이 죽은 것에서 산 것으로 부활하는 느낌이 들어요. 집에서는 게으름뱅이 아들이었던 총각 마저도 똑똑한 양반으로 다시 태어나지요. 농사일의 비밀이 숨겨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이 이야기가 죽음과 부활의 이야기로 읽혀요. 농사 역시도 물론 이 범주에 들어가고 말이에요.
선생님, 어떠세요? 제가 생각한 게 맞나요?
이렇게 이야기를 죽음과 삶에 대한 이야기로 읽고 나니 <강아지 똥>도 생각이 났어요. 똥이 민들레로 다시 태어나는 것 역시도 죽음과 삶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또 《밥데기 죽데기》도 떠올랐지요. 밥데기 죽데기가 태어나기 위해서 꼭 거쳐야 했던 과정 가운데 하나가 바로 똥통에 담가져 있는 것이었잖아요.
그러고 보니까 선생님은 아주 오래 전부터 죽음과 삶의 비밀을 아주 잘 알고 계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전 게으름뱅이 총각이 똑똑한 양반이 아니라 실은 선생님이 진짜 똑똑한 양반이었다고 생각하게 됐답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 선생님이 살아계셨다면 하지 못했을 지 몰라요. 제가 선생님을 알게 됐을 때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늘 선생님은 가까이 하기 어려운 분이었어요. 아마도 선생님께서 삶과 죽음의 고비에 서 계실 때가 많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선생님이 너무 편해졌답니다. 살아 생전 선생님의 굴레였던 힘든 현실들을 벗어나셨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즉 선생님께서 좀더 자유로워지셨다고 생각을 하니 선생님을 대하기가 편해진 거예요. 마치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에 나오는 하느님 같은 느낌이랄까요? 이런 점에서 선생님도 돌아가시긴 했지만 동시에 예전보다 훨씬 친근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신 것 같아요.

선생님.
전 요즘 선생님이 쓰신 옛날이야기 문체에 대해 연구해볼까 생각하고 있답니다. 내년에는 조금이나마 선생님 앞에 성과를 이야기해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선생님이 힘을 불어넣어 주세요.
그럼,
1년 뒤에 다시 소식 전하겠습니다.

2010년 5월 6일
오진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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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0년 5월 13일 똘배어린이문학회에서 주최한 권정생 선생님 3주기 추모제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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