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선생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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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제 목    [편지글] 권정생 선생님께 - 권정생 선생님 동시

권정생 선생님께


선생님, 잘 지내고 계신지요.
올해는 봄이 봄 같지 않고 어찌나 추운지, 과연 봄이 오기는 하는 건지 궁금할 정도였어요.
이게 다 기후변화 때문이라네요. 음--. 굉장히 찔리는 말이에요. 아무리 이런저런 이유를 대어 봐도 제가 기후변화에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으니까요.
다행히 5월에 들어서면서 날씨가 제법 봄다워졌어요. 아침저녁으로는 조금 쌀쌀한 듯 하지만 낮에 걸어 다니다 보면 찔끔 땀이 날 때도 있어요.
그런데 따뜻한 날씨를 기다릴 때는 언제고 막상 날씨가 따뜻해지자 또 다른 고민이 몰려와요. 작년 여름의 무더웠던 날씨가 떠오르는 거예요. 37도를 넘는 날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날며칠씩 계속됐거든요. 또 겨울엔 얼마나 추웠는지……. 혹시 올해도 여름엔 불같이 더운 날이 계속되고, 겨울엔 살을 에는 추위가 계속되는 건 아닌지 벌써부터 정말 걱정이에요.


선생님 계신 곳은 어떤가요?
이곳의 기후변화야 우리가 저지른 업보니 어쩔 수 없지만, 선생님 계신 곳은 이곳과는 다른 세계니 괜찮으신가요? 더구나 선생님은 저처럼 기후 변화에 일조하는 행동 따윈 하지 않으셨으니까요.
괜찮겠지 괜찮겠지 싶으면서도 걱정은 계속 돼요. 기후 변화에는 국경이 없다잖아요. 지구온난화를 일으킨 나라들은 따로 있는데 그 여파로 투발루나 몰디브가 잠겨가고, 북극의 얼음이 녹아가는 것처럼 말이에요. 제발 기후변화로 인한 고통이 선생님 계신 곳까지는 미치지 않았으면 싶어요.


에휴, 날씨 걱정하느라 본론이 너무 늦어버렸네요.
사실 전 요즘 걱정이 있어요. (날씨 걱정에 이은 또 다른 걱정……, 걱정도 참 많죠?)
‘시’ 때문이에요.
전 ‘시’를 좋아하지도 않지만 시에 대해 두려움 내지 열등감 같은 것도 있어요. 그래서 한동안은 정말 시를 들여다보려고도 하지 않았지요.
제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어요. 제가 생각나는 건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시를 배울 때마다 무척 괴로웠던 추억부터지요.
선생님이 시를 분석해서 설명해주시는 내용을 도무지 공감할 수가 없었거든요. 물론 모든 시가 다 그랬던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시가 다 그랬어요. 선생님께서는 시에 밑줄을 쫙 긋고 여기 이 부분은 무슨 내용을 상징하는 거라고 하시는데, 아무리 그렇게 생각하고 생각하려 노력을 해봐도 도무지 그렇게 느껴지질 않는 거예요. 어떤 시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설명하셨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아요. 선생님 말씀처럼 그런 내용이다라고 받아들이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썼지만 도무지 그렇게 되질 않았다는 기억만 남아 있지요. 아마 잊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돌이켜 보면 고등학교는 제 인생에 굉장히 큰 영향을 끼쳤어요. ‘시’하고는 다시는 상종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됐고, 국문과는 제 목표에서 쫙쫙 줄을 그어버리게 됐으니까요.


그리고 오랫동안 저는 시를 잊었어요. 물론 간간히 시를 다시 만날 수밖에 없을 때도 있었어요. 대학 학보사에 들어갈 때 본 시험에서는 사진을 한 장 주고 시를 쓰는 게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뜻밖에도 그 시가 굉장히 높은 점수를 받았더라고요. 또 생일 선물로 늘 시집을 사주는 친구도 있었고요.
하지만 이런 일들이 저를 다시 시와 가까워지게 만들진 못했어요. 학보사 시험 때 썼던 시는 어쩌다 보니 그럴 듯하게 써졌을 뿐이라 여겼고, 친구가 준 시집은 한두 편 대충 훑어보다 책장에 처박히기 일쑤였으니까요. 제 마음 속엔 ‘나랑 시는 너무 안 맞아’라는 생각이 너무나 강하게 박혀 있어서 이를 뽑아내기가 어려웠어요.
어린이 책을 보면서도 동시는 의도적으로 피해가곤 했어요. 가끔 ‘참 좋다’고 여겨지는 동시들이 있기는 했지만 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진 못했어요.


시에 대한 이런 선입관이 조금이나마 깨지기 시작한 건 선생님이 쓰신 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을 보면서였어요.
시집 같은 건 손에 쥐질 않는 제가 선생님 시집을 읽게 된 건 선생님이 궁금해졌기 때문이었지요. 어린이도서연구회 신입교육을 받으면서 <강아지 똥>이나 《몽실언니》를 볼 때, 솔직히 이해할 수가 없었거든요. 왜 이 작품들이 좋은 건지도 모르겠고, 몽실언니의 모습은 정말 답답하기만 했거든요. 도대체 왜 다들 권정생, 권정생하는 건지 궁금했어요.
그러다 《점득이네》를 읽으면서 갑자기 선생님 작품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강아지 똥>이나 《몽실언니》도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이미 봤던 선생님 작품을 다시 보고,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어요. 덕분에 저랑 상극이라 여겼던 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도 보게 된 거지요.   


그런데 거기에 가슴이 쿵 내려앉는 시들이 있었어요. 시를 보는 눈이 없으니 그 시가 좋은 시인지 아닌지는 잘 몰라요. 하지만 읽고 나서 가슴에 뭔가가 턱하니 걸린 듯, 가슴이 먹먹하면서도 눈앞에 이미지가 그려지는 시들이 있었지요.


그때 처음 깨달았지요. 시는 짧지만 시는 정말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요.


 


소 7


장터 푸줏간 옆을 지날 때마다
소는 거기 매달린
시뻘건 고깃덩어리를 보았다.
바깥까지 풍겨 나오는 냄새 때문에
처음엔 신기했다가
그 다음엔 무서웠다가
다음엔 왠지 처량해졌다.
그 피 냄새와
시뻘건 고깃덩어리가
살아서 울고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장터 푸줏간 옆을 지날 때마다
어디선지 할아버지와 아저씨들
그리고 동무들과 동생들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꽃밭


나팔꽃집보다
분꽃집이 더 작다


해바라기꽃집보다
나팔꽃집이 더 작다


“해바라기꽃집은 식구가 많거든요”
제일 작은 채송화꽃이 말했다.


꽃밭에 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삼베 치마 1


왕골논 안 집
안동 아지매 치마 안에
갈숲 바람
바닷바람 들었다.


아지매 물동이 이고
바삐 바삐 걸어가면


삼베 치마
사륵 사륵 사륵
갈숲 바람 소리
바닷바람 소리


 


생소깝 - 안동 껑껑이 1 가운데


생소깝 해 왔니껑?
한 짐 쫏아 왔제요.
내굽아 어예 땔리껑?
그게 좋제요.
내구랍으만 실컷 울제요.
생소깝 지피만 내구랍고
내구랍으만 실컷 울고
천생 과부는 생소깝 지펴 놓고
실컷 실컷 울어야제요.


 


이때부터였어요. 전 여전히 시랑 친해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시에 대한 선입견은 확실히 깰 수가 있었지요.
그런데 말이에요, 요즘 다시 시가 두려워지기 시작해요.
중학교 2학년이 된 아이가 숙제를 해야 하는데 도무지 모르겠다며 저한테 국어 책을 들고 왔어요.
숙제는 본문에 있는 시가 아니었어요. 단원을 소개하는 쪽에 나와 있는 시들을 본문처럼 분석해 오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분석 방법이라는 게 저로서는 참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시에 나타난 은유법, 직유법을 찾아내고,
각 구절이 촉각적 심상인지, 후각적 심상인지, 시각적 심상인지, 공감각적 심상인지를 쓰고,
각 연이 여성적인지 남성적인지를 써 가야했어요.
제가 이해하기 힘들었던 건 여성적, 남성적을 구분하는 것이었어요. 과연 시 한편을 가지고 이런 구분을 하는 게 맞는가 싶기도 했지만, 여성적이라는 건 정적인 것이고, 남성적인 건 동적이라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또 이런 구분 방법에 따라 여성적 남성적을 구분한다고 해도 잘 구별이 되지 않는 것도 있었고요.
제가 여성적이라 느끼는 걸 아이는 남성적이라 느끼기도 했고, 제가 남성적이라 느끼는 걸 아이는 여성적이라 느끼기도 했죠. 결국 남성적인지 여성적인지는 세 식구가 다수결로 결정해서 숙제를 마쳤어요.
숙제를 하면서 저는 아이가 저처럼 시를 싫어하게 될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요. 아이가 공감하지 못하는 분석 방법으로 이렇게 분석을 하다가 진짜 시의 참맛을 잃어버리면 어쩌나 하고 말이에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아이는 어려서는 툭하면 자기가 시를 읊어보겠다고 했어요. 새벽에 일어나서 본 가로등 불빛이 예쁘다면서, 꽃잎이나 낙엽이 날리는 걸 보면서, 둥근 달님을 보면서……. 아이는 뭔가 인상적인 장면을 보거나 가슴 뿌듯한 일을 보면  길을 가다가도 “엄마, 내가 기분을 시로 말해 볼게.” 하곤 했죠.  
이런 모습이 점차 사라진 건 초등학교 3-4학년쯤이었어요.
“왜 요즘엔 시로 말 안 해?”
하고 물으니
“시는 리듬감, 반복……, 뭐 이런 게 있어야 하는 거라…….”
하고 입을 다물기도 했어요.
이때도 걱정은 됐지만 아주 심각하게는 생각하지 않았지요. 그런데 이번엔 정말 심각한 고민이에요.
시란 이렇게 낱낱이 해체하고 분석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거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데 말이에요.


선생님!
뭐 좋은 방법 없을까요?
저도 열심히 생각해 볼 테니, 선생님도 좋은 방법 있으면 꼭 알려주세요.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을 게요.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2013년 5월 7일
답장을 손꼽아 기다리며....오진원 드림.






이 글은 2013년 5월 14일 똘배아동문학회에서 주최한 권정생 6주기 추모제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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