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선생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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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제 목    권정생 선생님의 옛이야기 그림책을 보면서-<훨훨 간다>, <길 아저씨 손 아저씨>

권정생 선생님의 옛이야기 그림책을 보면서

 

《훨훨 간다》(권정생 글/김용철 그림/국민서관/2003)
《길 아저씨 손 아저씨》(권정생 글/김용철 그림/국민서관/2006)

 

1.
나는 요즘 권정생 선생님이 쓰신 옛이야기에 관심이 아주 많다.
사실 권정생 선생님의 옛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다. 가장 먼저 나온 건 1991년에 나온 《남북어린이가 함께 보는 전래동화 6-10》(사계절)다. 하지만 이 책은 이현주 선생님과 함께 엮은 책으로, 어느 이야기를 어느 분이 썼는지 확인할 수가 없다. 그러니 권정생 선생님의 옛이야기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건 1993년 나온 옛이야기 그림책 《훨훨 날아간다》(국민서관)와 《눈이 되고 발이 되고》(국민서관)부터다. 이후 이 두 권은 《훨훨 간다》(국민서관, 2003년)와 《길 아저씨 손 아저씨》(국민서관, 2006)로 새롭게 나왔다. 그리고 권정생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뒤에야 세상에 나온 《꼬부랑 할머니》(한울림어린이, 2008)와  《닷 발 늘어져라》와 《똑똑한 양반》(한겨레아이들, 2009) 이 선생님이 쓰신 옛이야기의  전부다.
권 수도 많지 않지만 이 가운데 세 권이 그림책이고, 《닷 발 늘어져라》,《똑똑한 양반》은 두 편씩 모두 네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으니 편 수로도 많지 않다. 하지만 많지 않은 편수에도 권정생 선생님 옛이야기는 눈여겨 볼 것이 많다. 특히나 1993년에 나왔던 두 권의 그림책 《훨훨 날아간다》와 《눈이 되고 발이 되고》의 개정판으로 나온 《훨훨 간다》와 《길 아저씨 손 아저씨》를 보는 재미는 남다르다. 10년이란 세월이 지나며 같은 이야기를 어떻게 다르게 썼는지 견주어 보는 재미 때문이다.

2.
우선 《훨훨 간다》와 《훨훨 날아간다》를 살펴보자. 일단 제목에서 ‘날아간다’가 ‘간다’로 바뀐 것이 눈에 띈다. 그런데 이야기를 읽다보면 ‘날아간다’가 ‘간다’라는 말로 줄은 것만큼 이야기에서도 군더더기 말이 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어느 산골에 조그마한 외딴집이 있었습니다.
외딴집 오두막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둘만 살았어요.
할아버지는 밭에 나가 일하고 할머니는 집에서 부지런히 길쌈을 했지요.
그런데 할머니가 이야기를 좋아해서 날마다 할아버지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랐습니다.
할아버지는 반대로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들려줄 이야기가 없었어요. -《훨훨 날아간다》




어느 산골 외딴집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어요.
할아버지는 밭에 나가 일하고, 할머니는 집에서 길쌈을 했지요.
할아버지가 밭에서 돌아오면
할머니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랐어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이야기라는 건 아무것도 할 줄 몰랐어요. - 《훨훨 간다》



이야기의 첫 번째 장면이다. ‘외딴집’처럼 반복해서 나오는 단어도 빼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어요’처럼 굳이 둘이 살았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도 빠졌다. 필요 없는 부분이 빠지고 나자 글은 가벼워졌다. 이야기 시작 부분에서 늘어지는 대목이 사라지니 다음 이야기로 더욱 쉽게 빠져든다.
하지만 《훨훨 간다》가 《훨훨 날아간다》보다 돋보이는 까닭은 간결한 문장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핵심과 부분을 정확히 구별해서 핵심은 살리고 부분은 생략해서 본래 이야기의 의미를 또렷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훨훨 간다》를 《훨훨 날아간다》랑 견줘 보면 할아버지가 농부에게서 이야기를 사고, 집에 와서 할머니한테 그 이야기를 해 주는 장면이 한 장면씩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할아버지가 황새 동작을 흉내 낸 말을 사가지고 와서 할머니에게 그대로 해 주고, 마침 이때 담을 넘어온 도둑의 행동과 황새를 흉내 낸 말이 맞아떨어지면서 도둑이 혼쭐나게 도망가는 것이다. 즉 황새의 모습을 흉내 낸 말들이 도둑의 행동과 딱 맞아떨어지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게 이 이야기의 묘미다. 이런 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 핵심 장면을 한 장면씩 늘린 건 아주 효과 만점이다.
대신 《훨훨 간다》에는 다음 날 할머니가 부엌에 있던 누룽지가 없어진 걸 발견하고 이야기 덕에 도둑을 쫓았다는 설명을 덧붙인 장면과 그 뒤로 할아버지 할머니가 마주 앉아 이 이야기를 하며 웃으며 지냈다는 이야기는 사라졌다. 할머니는 누룽지를 생쥐가 물어 갔나 하고 생각하지만 듣는 이는 누구나 도둑이 자신과 딱 맞아떨어지는 이야기를 듣고 혼쭐이 나서 도망가 버린 상황을 다 알고 있다. 그러니 이 부분이 빠졌어도 아쉬움이 없다. 아니, 오히려 괜히 이미 다 알고 있는 부분을 중언부언하지 않아서 깔끔하고, 한편으론 도둑이 놀라 도망치던 강렬함을 독자 몫으로 간직할 수 있어 더 좋다. 마무리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앞에 이야기를 듣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큰 소리로 즐겁게 웃는 장면이 있기에 그 뒤로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이 이야기를 하며 잘 지낼 것이라는 건 충분히 짐작이 간다.
10년 후에 다시 쓰신 이야기는 다른 어떤 옛이야기보다 깔끔하면서도 이야기의 핵심을 잘 보여주고 있다.

3.
《길 아저씨 손 아저씨》는 《눈이 되고 발이 되고》(국민서관)를 새롭게 쓴 작품이다. 하지만 《훨훨 간다》하고는 또 다르다. 《훨훨 간다》는 여전히 옛이야기 그림책으로 나왔지만 《길 아저씨 손 아저씨》는 우리 그림책으로 나왔다. 분명 같은 이야기인데 옛이야기였던 책이 우리 그림책이 된 데에는 까닭이 있다.
《눈이 되고 발이 되고》는 흔히 ‘지성이와 감천이’ 로 알려진 이야기다. 장님이 앉은뱅이의 다리가 되고, 앉은뱅이는 장님의 눈이 되어 구걸을 하며 지낸다. 샘물에서 금덩어리를 발견하지만 장님은 앉은뱅이가 발견한 것이니 앉은뱅이가 가져야 한다고 하고, 앉은뱅이는 장님이 자신을 업고 다녔으니 장님이 가져야 한다며 다투다 결국 금덩어리를 물속에 던져버린다. 그러자 금덩어리가 두 개가 되었고, 두 사람은 금덩어리를 팔아 닭이랑 소랑 돼지도 키우고 농사도 지으며 잘 살게 된다.
《길 아저씨 손 아저씨》도 등장인물은 같다. 앞을 못 보는 손 아저씨가 걷지 못하는 길 아저씨를 업고 구걸을 하며 지낸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우연히 발견한 금덩이가 아닌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잘 살게 된다. 분명 앞을 못 보는 장님과 걷지 못하는 앉은뱅이가 서로 도우며 지내고 잘 살게 된다는 이야기의 처음과 시작은 같지만 이야기 줄기는 전혀 다르다.
《눈이 되고 발이 되고》는 두 사람 사이의 우정과 믿음에 중심이 맞춰 있다. 그러다 보니  발견한 금덩어리를 서로에게 권하다 샘물에 버리고, 그 버렸던 금덩어리가 두 개가 된 것을 보고서 고민 끝에 그 금덩어리를 들고 두 사람이 함께 마을로 내려오는 장면이 전체 이야기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길 아저씨 손 아저씨》는 두 사람이 함께 도와가며 살아가는 모습이 중심이다. 어릴 때부터 방 안에서 꼼짝 못하고 살던 두 사람은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자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 그래도 다행히 손 아저씨는 지팡이를 짚고 더듬더듬 나들이를 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손 아저씨는 한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손 아저씨를 찾아간다. 손 아저씨는 길 아저씨를 업고, 손 아저씨는 길 아저씨의 눈이 되어 한 몸처럼 산다. 두 사람은 주로 구걸을 했지만 이따금 일감을 얻으면 새끼도 꼬고 짚신도 삼으며 열심히 일을 한다. 세월이 흐르며 두 사람의 솜씨는 점점 좋아져서 남에게 기대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고, 장가도 가서 아주아주 행복하게 산다.
《길 아저씨 손 아저씨》가 옛이야기 그림책이 아닌 우리 그림책으로 나온 까닭은 여기에 있다. 기본 이야기의 줄기는 옛이야기에서 빌어 왔지만 풀어나가는 방식은 다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이 이야기를 이처럼 다른 방식으로 풀어가게 했을까?

“여보게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하지?”
“글쎄, 우리도 점점 늙어가니 맨날 이렇게 돌아다니며 구걸해 먹을 수도 없을 거야.”
“그러게 말이야. 오늘 이렇게 금덩어리를 얻게 된 것도 하늘이 우리의 딱한 사정을 알고 내리신 거야.” - 《눈이 되고 발이 되고》

두 개가 된 금덩어리를 보고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두 권의 책을 견주어 보며 내내 이 대목이 눈에 밟혔다. 혹시 권정생 선생님이 《눈이 되고 발이 되고》를 옛이야기가 아닌 《길 아저씨 손 아저씨》로 새롭게 쓰셨던 까닭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의 우정과 믿음도 좋지만 좀더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셨을 것 같았다.
이처럼 두 이야기는 중심 내용이 다르기에 별개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두 이야기의 근본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옛이야기에 나오는 금덩어리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행운이 아니라 열심히 살아온 삶에 대한 결과를 상징으로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4.
혹시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옛이야기를 쓰고 난 뒤 10년 이상 시간이 지난 뒤 같은 이야기를 다시 쓰신 거니 당연히 더 좋아질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말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게다가 이처럼 한 이야기를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쓴 경우가 흔하지 않아서 뭐라 말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그렇지만 1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났다고 누구나 다 옛이야기를 더 좋게 쓸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같은 시리즈의 옛이야기 그림책 가운데는 권정생 선생님 말고도 개정판 작업을 한 작가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의 이야기가 더 좋아지진 않았다.
비록 얼마 안 되는 권정생 선생님의 옛이야기지만 그 이야기들을 읽으며 옛이야기를 많이 쓰는 다른 어떤 작가보다도 옛이야기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옛이야기가 살아 움직이는 방법을 찾으려 애쓰신 흔적을 본다. 그리고 권정생 선생님 이야기를 보면서 새롭게 쓰여지는 옛이야기는 과연 어떠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남는다.

 


이 들은 2010년 권정생 공부모임에서 권정생 선생님 3주기 기념으로 발간한 자료집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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