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선생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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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제 목    [편지글] 권정생 선생님께
권정생 선생님께.

선생님, 잘 지내시죠?
선생님이 계신 하늘나라가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분명 이 땅에 계실 때보다는 훨씬 유쾌하고 가벼운 마음이실 거란 생각이 들어요.
참 이상하게도 선생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땐 선생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늘 눈물이 나곤 했어요. 선생님께서 익살을 부려봤다고 하신 《밥데기 죽데기》를 볼 때도 그랬고, 또야 너구리의 천진난만함이 돋보였던 <또야 너구리의 심부름>을 볼 때도 그랬어요. 다른 작품들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었고요. 그래서 늘 선생님을 생각할 때면 왠지 모를 무게감이 저를 압도하곤 했어요.
그런데요, 일 년 전 어느 날이었어요.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를 보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너무 친근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선생님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는 것 같았어요. 생쥐랑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마치 장난꾸러기 같아 보이기도 해요. 사소한 것 때문에 때로는 삐치기도 하고, 때론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하는 모습은 아마도 선생님 마음속에 있는 또 다른 모습이겠죠? 몰약을 발라서 몸이 썩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에 제 옛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저도 한때 몸이 썩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방부제가 많이 들은 음식을 먹겠다고 객기를 부리던 시절이 있었거든요.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또 있어요. 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당시의 뒤숭숭한 사회 모습과 선생님의 생각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 동화라고 하기엔 너무 직설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내뱉는 말들이라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느껴져요. 그때 그 시절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할 때의 분위기랑 비슷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요즘 아이들이 볼 때는 무슨 소린지 잘 못 알아들을 수도 있겠지요. 이미 시대도 많이 달라졌고, 무엇보다 생활을 하면서 욱하며 나온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사건의 배경 같은 건 생략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전 그렇지 않지요. 제가 가장 혈기왕성하던 시절인 80년대 초반의 이야기니까요. 그래서일까요? 마치 아이들은 모르는 비밀이야기를 선생님과 주고받는 듯 한 느낌까지 들었다니까요. 조금 못된 심보죠?
겉으로 늘 심각하고 진지하고 차분해 보이기만 하셨지만 실은 선생님 마음속에는 이처럼 천진난만하고, 유쾌하고, 재미있는 모습이 아주 많이 숨겨 있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이런 모습이 더 많았을지도 모르지요. 만약 세상이 그렇게 혼란스럽지 않았고, 선생님 건강이 괜찮으셨다면 선생님 작품 속에서 이처럼 밝은 이야기도 좀 더 많아졌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밥데기 죽데기》, 《랑랑별 때때롱》 같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가려져 있던 선생님의 이런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선생님께 편지를 쓰기 전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어봤어요. 감기에 걸려 학교에 못 가고 누워있는 아이에게 <장가가던 꿈 이야기>도 읽어줬어요. 그런데 아이도 단박에 눈치 채던 걸요. “그거 권정생 선생님 이야기지?” 하고 묻더라고요. 선생님 덕분에 아이와 저 사이에는 든든한 다리가 하나 더 놓였어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먼저 죽은 생쥐는 만나셨겠죠? 선생님의 또 다른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생쥐 말이에요. 언젠가 저도 선생님을 만나 뵐 수 있겠지요? 생전에는 미처 만나 뵙지 못했지만, 하늘나라에서는 꼭 만나 뵙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참, 저도 지금은 죽은 건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답니다.^^ 무거운 제 몸도 원래 있었던 곳으로 다 보내고 갈 테니 꼭 만나주셔야 해요.

2009년 5월 9일.
오진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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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9년 5월 13일 똘배어린이문학회에서 주최한 권정생 선생님 2주기 추모제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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