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선생님 방


  Total : 18, 1 / 1 pages  

이 름   
제 목    랑랑별 때때롱

선생님, 지구별 우리가 보이시나요?
랑랑별 때때롱(권정생 글/정승희 그림/보리/2008년)

 


권정생 선생님이 타계하신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그 사이 선생님이 쓰신 새로운 책들이 여러 권 출간되었다. 『꼬부랑 할머니』, 『엄마 까투리』,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 그리고 『랑랑별 때때롱』이다. 이 가운데 『랑랑별 때때롱』은 권정생 선생님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랑랑별 때때롱』은 권정생 선생님이 2005년 12월부터 2007년 2월까지 어린이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에 연재한 작품을 단행본으로 묶은 것이다. 2007년 5월에는 힘든 투병을 하시며 머리말까지 보내주셨다.
랑랑별 때때롱.
제목을 한번 읽어본다. 혀가 동그랗게 말리며 나오는 말의 느낌이 참 좋다. 익살스러우면서도 또랑또랑한 느낌이다. 그냥 제목만으로는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어도 그냥 친근하게 느껴진다. 제목만 볼 때는 『밥데기 죽데기』가 떠오르기도 한다. 『밥데기 죽데기』 역시 제목만으론 어떤 내용일지 알 수 없지만 제목이 주는 느낌에서 웃음이 나오기 때문이다. 통일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으라고 조금 익살을 떨어보았’다는 『밥데기 죽데기』. 『랑랑별 때때롱』에서는 선생님의 익살이 더해졌을 거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아니나 다를까, 이야기의 시작부터 다르다. 지구별에 사는 아이 새달이가 랑랑별에 사는 때때롱을 만난다. 지구별 아이와 랑랑별 아이의 만남이라니 공상과학 이야기인가 싶기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지구별과 랑랑별이라는 우주적인 만남이지만 여기서는 마치 옆집 아이가 친구를 불러 이야기하듯 만난다.
한밤중에 “찾았다! 찾았다!”하는 큰 소리가 나고, 그 소리에 곤히 자고 있던 새달이가 동생 마달이를 불러 밖으로 나간다. 하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릴 뿐이다. 때때롱은 랑랑별을 못 믿는 새달이 마달이에게 랑랑별을 보여준다. 북두칠성에서 다섯 걸음쯤 떨어진 곳에서 조그만 별 하나가 해바라기꽃처럼 활짝 빛났다가 오무라진다. 그곳이 랑랑별이다. 때때롱은 이렇게 까마득히 멀리 떨어진  하늘에서 마치 바로 옆에 있는 아이처럼 새달이 모습을 훤히 내려다본다. 기계 장치 같은 것 하나 없이도 서로 이야기를 잘도 나눈다. 새달이네 집 호박도 기다란 기다란 집게로 뚝 따 가지고 오고, 새달이네 돌담 위에 랑랑별의 호박씨를 놓아두기도 한다. 마치 만화 같으면서도, 자꾸 호기심이 생기게 한다.
때때롱은 새달이와 마달이의 작은 행동 하나 하나를 다 안다. 반면 새달이와 마달이는 랑랑별이나 때때롱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 채 자신들의 모습이나 행동을 그대로 들키고 만다.  자신이 방귀를 뀐 것까지 다 알고 있는 때때롱을 속이려고 하루 종일 입으로 방귀 소리를 내는 마달이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비록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기분 나빠하기도 하고,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천상 아이들 모습 그대로다.
그런데 이쯤에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때때롱은 랑랑별에서 지구별의 새달이와 마달이를 훤히 다 내려다보고 있는데 왜 새달이와 마달이는 때때롱이 말을 걸기 전에는 연락조차 할 수 없을까 하는 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일방적이다 싶을 정도다. 게다가 늘 하늘에서 새달이와 마달이의 모든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점에선 하느님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만약 같은 또래의 때때롱과 매매롱이 아니었다면 새달이와 마달이 기분이 나빠질 수도 있을만한 상황이다.
그러다 드디어 새달이와 마달이에게도 랑랑별에 갈 기회가 생기는데, 그 모습이 아주 장관이다. 랑랑별에 가고 싶어하는 새달이네 개 흰둥이에게 날개가 생기고, 소 누렁이는 흰둥이 꼬리를 입에 물고, 새달이와 마달이는 누렁이 꼬리를 잡고, 개구리랑 왕잠자리랑 물고기들은 흰둥이랑 누렁이 몸에 찰싹찰싹 붙어 하늘로 날아오르고, 아주 순식간에 랑랑별에 가게 된다.
새달이랑 마달이가 랑랑별에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빨갛고 노란 개가 있는 것처럼 몇 가지 차이가 있긴 해도 지구별과 거의 똑같은 곳이 랑랑별이었다. 이상한 점이라면 호롱불을 켜 놓고 밥 먹는 걸 오백 년이나 가르쳤다는 점이다. 새달이와 마달이는 때때롱 할머니와 함께 몸을 안 보이게 해 주는 도깨비 옷을 입고 오백 년 전의 랑랑별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오백 년 전 랑랑별은 과학의 첨단을 걷는 곳이었다. 사람이랑 똑같이 생긴 로봇이 학교로 아이를 데리러 오고, 수많은 자동차들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질서 있게 달린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아이 보탈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보탈은 이것저것 남의 유전자 가운데 좋은 걸 골라 맞추어서 엄마 뱃속에 집어넣어서 태어났고, 노는 것도, 웃을 줄도, 울 줄도, 화낼 줄도, 재미있는 것도, 슬픈 것도, 사랑하는 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노인들은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고, 아기는 엄마 뱃속이 아닌 기계로 만든 아기집에서 태어나고 있다. 사람이 편해지기 위해서 로봇을 만들었는데, 사람들도 로봇처럼 되어버린 셈이다.
이제 의문은 하나하나 풀린다. 랑랑별의 때때롱이 지구별 새달이를 훤히 살필 수 있던 건 지구별의 모습이 랑랑별의 과거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오백 년 전 랑랑별의 모습을 향해 가고 있는 지구별에 대한 따끔한 충고다. 랑랑별에 갈 때 새달이랑 마달이가 앞장서지 않고 흰둥이랑 누렁이, 그리고 개구리랑 왕잠자리랑 물고기가 앞장서 갔던 것도 마찬가지다. 자연을 무참하게 해치는 우리의 모습이나 아기까지도 물건을 생산해내듯 만들어내는 오백 년 전 랑랑별의 모습이나 자연과 생명의 질서를 깨뜨리는 똑같은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랑랑별에 가면서 주제가 확 드러나면서 갑자기 무거워진 감이 있다. 하지만 무거운 주제를 무겁게만 끌고 가지 않고 중간중간 유머를 느낄 수 있게 해 준 것이 있다. 투명 망토인 도깨비 옷과 이를 이용한 홍길동 놀이였다.
권정생 선생님의 생각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책. 아이들과 좀더 가까워지고 싶어 아이들처럼 되어가고 그래서 마음만큼은 개구쟁이처럼 익살스러워지는 선생님의 모습까지 보이는 것 같다.
환생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지만 세상에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고, 여전히 전쟁 중이라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 둘 수 있다고 하신 유언장 내용이 떠오른다. 선생님이 떠나신 지 1년. 세상을 보니 권정생 선생님이 환생하시려면 아직 먼 듯 하다. 그래도 랑랑별에서 배운 게 있으니 랑랑별처럼 오백 년까지는 걸리진 않기를!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로 펴내는 《기획회의》 통권 226호(2008년 6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Copyright 1999-2017 Zeroboard / skin by Z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