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선생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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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제 목    점득이네
제목 없음


세상이 슬프니 이야기도 슬프다!

점득이네
권정생 지음/이철수 그림/창작과비평사/1990. 6.25. 초판/252쪽/7000원

1
우리는 흔히 동화는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만일 어린이들이 이야기에서 조그마 한 희망도 발견하지 못하고, 오히려 절망만을 느낀다면 그 동화는 문제가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는데 너무 급급한 나머지 동화를 온통 장미빛 희망으로만 채워놓는 경 우도 있다. 우리는 보통 그런 책들을 가리켜 '동심천사주의'라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동심천사주의' 역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어린이 세계를 아무런 고통도 없는, 단지 희망만이 있는 그런 거짓 세상으로 그려놓았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동심천사주의로 쓰여진 책을 읽을 때는 희망을 찾는 듯 하지만 현실에서는 좌절을 느낀 다. 때문에 오히려 책을 읽지 않은 것만도 못한 결과를 낳기 쉽상이다.
그러면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 '희망'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사람에 따라서, 경우에 따라서, 나이에 따라서 제각각 달라지게 된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시덥지 않은 말로 들리는 것이 또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가장 절실한 희망이 되기도 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2.
<점득이네>라는 작품에 대한 비평에 앞선 이런 말들이 어쩌면 좀 구질구질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점득이네 를 비롯한 권정생의 작품들을 제대로 보려면 한번쯤은 스스로 정리를 하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점득이네>를 읽고 나면 어찌보면 희망보다는 절망이, 좌절이 더 다가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책을 어린이들에게 꼭 권해야 할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점득이네 는 우리 역사의 암울한 시기의 이야기다. 시작은 광복 직후부터이고 끝은 현재지만 주요 배경 은 광복 직후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부터 6.25가 끝나기까지다. 이 시기는 우리 나라 민족이면 누구나 인정하 는 최대의 혼란기다. 짧은 시기지만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기쁜 감정, 뒤이은 남북 분단, 그리고 민족간 의 전쟁이라는 대 격변과 혼란을 겪었다.
<점득이네>는 이러한 혼란 속에서 너무나 불쌍한 처지에 놓인 점득이와 점례 그리고 판순이의 운명을 중 심으로 전개되어 나간다. 주인공인 점례와 점득이는 마지막까지도 먹고 살아가기조차 힘든 운명으로 끝을 맺 는다. 하지만 이 책은 그냥 슬프기만 하진 않다. 왠지 모르게 가슴을 싸아하게 만들고, 또 이것저것 생각하게 하고, 그리고 내 앞을 가로막고 있던 뭔가가 툭하고 터지는 듯한 그런 느낌을 준다.
물론 이 책은 너무 슬프다. 슬픈 책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희망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슬프기만 하고 좌절에 빠지게는 하지 않는 어떤 힘을 갖고 있다.
작가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가끔 아이들의 편지를 받아 보면, 너무 슬픈 이야기만 쓰지 말라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이번에도 그런 이 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슬픈데 어떻게 슬픈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세상이 슬픈데 어떻게 슬픈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나는 이토록 슬픈 머리말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처럼 슬픈 이야기 속에서도 슬픔과 절망으로 끝나게 하 는 게 아니라 그 속에서 힘을 얻을 수 있는 건 이 책이 우리 민족의 현실 문제를 너무도 솔직하게 보여주며 우리의 현실과 민족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3.
초등학교 시절 즐겨보던 텔레비전 프로그램 가운데 '113 수사본부'라는 게 있었다. 본부장은 탤런트 전운이었고. '수사반장'이 범죄자를 체포하는 걸 극화해 보여준다면, '113 수사본부'는 간첩을 체포하는 걸 극화해 보여주는 것이었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분단으로 인해 남북으로 갈라져 살던 가족 가운데 간첩으로 내려오는 경우가 많았고, 간첩으로 내려온 가족을 보고서 차마 신고를 못하고 있다 이른바 불고지죄로 함께 구속되는 비극적인 일이 자 주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좀 심했다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나도 모르게 간첩은 설혹 그 간첩이 부모일지라 도 신고를 해야한다고 생각을 다져나가게 됐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너무나 맹목적이었던 나 자신의 모습이 우스워 보이기도 한다. 간첩이란 북한이 우 리 나라를 전복시키기 위해서 보내는 거고 우리 나라는 평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간첩 따윈 보내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뒤 우리 나라도 북한에 간첩을 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이가 먹어가 며 학교에서 배웠던 것 가운데 사실이 아닌 것도 많고, 또한 알져지지 않은 진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되 었다.

4.
<점득이네>는 어린 시절 '멸공 통일'을 부르짖으며 반공정신을 다져나가던 시절 학교에서 배웠던 사실과는 조금은 거리가 먼 책이다. 아니, 공산주의냐 자본주의냐 하는 이데올로기보다는 우리 민족을 잘 살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쪽이야말로 같은 편이라는 생각을 하는 민중들의 소박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는 책이다.
때문에 <점득이네>에서는 인민군과 국군, 그리고 소련군과 미군에 대해 일관된 모습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점득이네>는 조국이 해방된 뒤 점득이네가 만주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처음 시작부터 순조롭지가 않다. 압록강은 소련 군인들이 지키고 있고, 아버지는 소련군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게 된다. 점득이의 입장에서 소련군은 아버지의 원수가 된 것이다.
하지만 점득이는 곧 혼란을 겪게 된다.
어머니 고향을 찾아가는 길에 만난 할머니는 소련군이나 미군이나 똑같이 일본군을 대신한 또 다른 점령군 이라고 했다. 반면 떡 가게 아주머니 집에선 소련군을 집과 땅을 나눠줄 해방군이라 했다. 또 점득이가 가장 좋아하는 사촌 형 승호는 가난한 사람들의 편이 되기 위해 집을 나갔다. 가난한 사람들 편이란 인민군이었다. 반면 경찰이나 군인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모습도 많이 그려지고 있다. 승호 형을 찾아온 경찰들과 토벌대 들은 집안 살림을 다 부수고 집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점득이네가 살던 모과나무골에서 승호와 함께 집을 나 간 청년들의 집은 모두 같은 꼴을 당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집을 나간 청년들을 원망만 할 순 없었다. 집 을 나간 청년들은 누구나 다 인정할 수 있는 착한 애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점득이에게는 가장 비극적인 일이 생긴다.
6.25가 한창인 어느 날, 군인들과 동네 이장님이 함께 와서 마을 사람들에게 누가 와서 연설을 한다며 깨끗 한 흰옷을 입고 동쪽 강둑으로 모이라고 지시를 내린다. 점득이는 어머니와 함께 마을 사람들이 모여있는 강둑으로 갔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비행기였다. 비행기는 흰옷 입은 사람들을 향해 폭격을 퍼부었고 어머니는 목숨을 잃었고 점득이는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눈이 멀고 말았다.
이제 점득이에게 자신이 믿고 살아야 할 조국은 과연 어떤 것일까? 작가는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답은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점득이가 찾아갈 고향을 조국으로 그린 건 아닐까 생각된다. 점득이에게는 노래를 잘 불러 고아원에서 미국으로 공부를 하러 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그러나 점득 이는 전쟁이 끝나면 외갓집에 가서 승기랑 승숙이 누나를 기다려야 한다며 미국행을 포기한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외갓집이 있는 모과나무골은 휴전선 넘어 북쪽으로 넘어가 버리고 만다. 그리고 점득이와 점례는 아 직도 고향에 가게 될 날을 기다리며 점득이가 거리에서 노래를 불러 버는 돈으로 힘겹게 생활을 해 나간다.

5.
이제 전쟁은 끝났다. 경제도 좋아져 당시의 어려운 상황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저 어렴풋이 짐작만을 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다. 아니, 모든 게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현재도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점득이와 점례도 아직 고향에 못 가고 어렵게 생활을 해 나가고 있고, 전쟁이 끝난 뒤 점득이네와 헤어진 판순이는 국밥집 부엌데기가 되어 남편도 없이 아기를 낳게되고, 그 아기는 잘 자라서 대학생이 되었다. 그리 고 전쟁이 끝난 뒤 한 번도 못 만났던 세 사람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인사를 나누게 된다. 불쌍한 거지 부부와 그들을 위해 돈을 건네주는 맘씨 좋은 아줌마로. 하지만 판순은 곧 깨닫는다. 노래를 부르던 남자가 장 님이었고, 그 남자가 부르던 노래 '가거라 삼팔선'은 판순이가 즐겨 부르던 노래라는 사실을. 판순이는 허겁지 겁 이들을 다시 찾기 위해 나선다. 하지만 어느 새 구호를 외치는 학생 시위대가 가득 밀려 오고, 노래를 부르 던 거지 남자와 여자는 사라지고 최루탄과 전투경찰까지 밀려든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만난 아들 한수. 한수 는 "어머니, 나중에 말씀드릴게요."라는 말만을 남기고 시위대쪽으로 뛰어간다.
너무나 엇갈리는 운명이 아닐 수 없다. 삼십년을 넘게 서로 찾으며 지냈던 점례와 점득이, 그리고 판순이는 그 세월의 흐름 속에서 서로를 알아보지도 못한 채 이렇게 헤어져야만 했다. 그리고 아들 한수도 어머니의 한을 풀기라도 하려는 듯이 통일 운동에 나서고 있다.

6.
점례와 점득이, 그리고 판순이가 현실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어쩌면 같은 남한에 있기 때문에 그래도 어느 정도 만날 가능성을 점칠 수는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북으로 간 사람들은? 아니, 점득이처럼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던 상황으로 고향이 북쪽으로 넘어가 버린 사람들, 또 그 반대의 경우에 있는 사람들은.
북에서 간첩으로 내려온 친척을 만나고 신고를 안 했다는 이유만으로 불고지죄 등의 혐의로 구속이 되곤 했던 상황을 생각해보면 남과 북으로 헤어져 있는 이들의 운명은 아직도 암울하기만 하다. 더군다나 점득이가 기다리는 사촌 승호와 승숙이 누나처럼 자진해서 인민군에 들어간 경우라면 더더욱 암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 우리 민족에게 이렇게 엇갈리는 그런 운명은 없어졌으면 좋겠다. 아버지의 병 구완을 위해 기 생이 되었지만 교회에도 열심히 다니며 깨끗하게 살려고 노력했던 탄실이의 경우 인민군의 말 한마디가 탄실을 인민군의 품으로 가도록 했다.

"……배가 고파 굶주리다 못해 어린 자식을 노비로 팔고 기생으로 팔고, 그렇게 죄 없는 어린것들이 부모 형제와 헤어져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일본이 쫓겨나자 미국이 삼팔선을 긋고 남쪽 땅을 강제로 손 아귀에 잡고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일제의 앞잡이는 다시 미제의 앞잡이가 되어 인민은 뼈를 깎는 고통을 겪고 있는데 어째서 조선에 강도가 없다고 하십니까? 우리는 강도가 물러날 때까지 싸울 것입니다……"(123-124 쪽)

이 말은 바로 탄실에게 운명과도 같은 말이었다. 굶주림 때문에, 병든 아버지를 공양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 이 기생이 된 탄실에게는 자신의 처지에서 자신과 같은 운명이 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고, 때문 에 당연히 인민군의 말에 동의, 인민군에 입대하게 된 것이다.
탄실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인민군의 말은 당시 힘들게 살아가던 사람들의 가슴에 와 닿았고, 그래서 무작정 인민군에 들어간 사람들도 많았다.
목사님 사모님조차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아니에요. 기도만으로는 안 되어요. 해방군들은 쉴새 없이 일하고 있어요.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 주고 토지를 나누고 있어요."
"그들은 모두 한 형제가 되었어요. 대장도 부하도 상전도 하인도 없어요. 누구나 동무라고 불러요……"(129 쪽)

물론 국군에 입대한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장대성 목사님은 미국의 앞잡이 노릇을 한다는 혐의로 총살의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하지만 장대성 목사님 은 미국의 앞잡이는 아니다.
인민군은 목사님을 총살하러 끌고 가며 이렇게 말한다.

"목사님은 정직하고 가난하고 신심이 깊은 분으로 그 동안 우리는 존경하고 있었소. 적어도 목사님의 사람 됨을 나무라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가난한 사람과 억눌린 사람들을 위하는 길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남의 나라인 미국에게 도움을 주고 조선을 이 지경으로 만들고 인민을 버림받게 만든 것이오."(137쪽)

장대성 목사님은 탄실이 덕분에 총살형은 면하게 된다. 하지만 씁쓸하기 그지없다. 인민군과 같은 논리 속에 선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려는 많은 사람들이 발을 디딜 곳은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남과 북으로 나누어졌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대립된 이념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6.25라 는 민족 전쟁을 겪었고, 또 그 6.25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 많은 아픔을 주었고, 그래서 우리는 서로 에 대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며 우리 자신이 스스로 입은 피해에 대해서 미처 생각을 못 하고 있는 건 아닐 까?

7.
<점득이네>의 모든 상황은 민족 분단의 현실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되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 책에서 아무런 문제도 해결되지 못한 채 그냥 끝맺음을 할 수밖에 없는 건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대신 우리에겐 과제만 남겨졌다. 우리 민족의 분단 문제에 대해서, 진정한 조국 해방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게 아마 그 시작일 것이다.
그래서 '세상이 슬픈데 어떻게 슬픈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이 오고 그런 슬픈 이야기는 이제 《점득이네》가 마지막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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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비평'에 올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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