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선생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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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제 목    닷 발 늘어져라, 똑똑한 양반

남북 어린이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이었을까?
《닷 발 늘어져라》, 《똑똑한 양반》(권정생 글/김용철 그림/한겨레아이들/2009)

1.
권정생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 한 권 두 권 나오는 책들을 보면 마음이 짠해지곤 한다. 《닷 발 늘어져라》, 《똑똑한 양반》. 이 두 권의 책도 권정생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2년이 지나 세상에 나왔다.
이 두 권은 권정생 선생님이 남과 북의 어린이들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 쓰신 옛날 이야기다. 선생님은 유언장에서도 북한 어린이를 위해 인세를 써 달라고 부탁하신 분이다. 그만큼 남과 북의 어린이들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계신다.
그렇다면 남과 북의 어린이들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고를 때 어떤 생각을 갖고 고르셨을까? 아마도 선생님이 꿈꾸는 세상의 모습과 가치를 담고 있는 이야기를 고르지 않았을까?

2.
두 권의 책에는 모두 네 편의 옛날이야기가 담겨 있다. 제목은 다소 낯선 듯 하지만 실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다.
<닷 발 늘어져라>는 흔히 ‘착한 아우와 못된 형’으로 알려진 이야기다. 나무를 하러 산에 간 동생은 도깨비 방망이를 얻어 오지만, 형은 도깨비 방망이를 얻기는 커녕 도깨비한테 흠씬 두드려 맞고 고추가 한없이 늘어나게 됐다는 이야기다.
<만석꾼 대감님>은 대감님네 쌀을 얻어먹고 살던 쥐들이 대감님네 식구들을 구해내는 이야기다. 쥐들이 뒷걸음질을 치면서 절을 하는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대감님이 식구들을 불러내자 쥐들은 대감님과 식구들을 대문 밖으로 이끌고, 이렇게 모두 밖으로 나가자 집이 폭삭 무너져 내렸다는 이야기다.
<똑똑한 양반>은 ‘새끼 서 발’이란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새끼 서 발이 깨진 물동이로, 깨진 물동이가 멀쩡한 물동이로, 멀쩡한 물동이가 죽은 개로, 죽은 개가 산 개로, 산 개가 죽은 말로, 죽은 말이 산 말로, 산 말이 죽은 처자로, 죽은 처자가 산 처녀로 바뀐다. 그리고 길을 가다 만난 양반하고 수수께끼 내기를 하는데, 그 내기에서 이겨 양반이 갖고 있던 말 두 마리하고 돈을 받아 가지고 집으로 간다.
<업이하고 가재하고>는 호랑이 먹이로 태어난 업이가 목숨을 건지게 된 이야기다. 업이는  스님의 말씀을 듣고 목숨을 건지기 위해 길을 떠난다. 가다가 아이들이 괴롭히는 가재를 구해주는데, 결국엔 그 가재 덕분에 목숨을 건진다.

3.
그런데 여기 실린 이야기들, 익숙한 듯 하지만 뭔가 다르다. 분명 잘 알고 있는 옛날이야기인데 기존의 옛날이야기와는 좀 다르다.
<닷 발 늘어져라>에는 옛날이야기에는 나오지 않는 화소가 들어가 있다. 산에 나무를 하러 갔던 동생이 주먹밥을 먹으려는데 갑자기 거지 노인이 나타나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니 주먹밥을 달라고 한다. 동생이 주먹밥을 주자 거지 노인은 주먹밥을 받아먹고는 돌멩이 하나를 주며 돌멩이가 굴러가는 데로 따라가 보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한다. 동생은 돌멩이를 따라가다 큰 못물 속으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새로운 세상이 있다. 동생은 그곳에서 거지 노인도 다시 만나고, 노인이 준 돈으로 떡을 사먹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날이 어두워져 커다란 빈집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도깨비들을 만난다.
형이 도깨비들한테 벌을 받는 장면도 조금 다르다. 도깨비들은 형을 둘러메고 드넓은 강물이 있는 곳에 데리고 가서 백 발쯤 늘어진 고추를 강 이쪽 둑에서 건너편 둑으로 척 하고 걸쳐 놓는다. 백 년 동안 다리 노릇을 하라고 말이다. 형은 백 년이 지나고서야 겨우 본래대로 고추가 오그라들어 착한 사람이 되어 심술을 안 부리고 잘 살게 됐다.
<만석꾼 대감님> 에도 새로 들어간 부분이 있다. 농사꾼 대감님은 부자이면서도 머슴들하고 똑같이 헌옷을 입고 논밭에 나가 일을 한다. 그래서 일을 할 때 보면 누가 머슴인지 누가 주인 대감님인지 알 수가 없었다.
<똑똑한 영감>은 이야기를 주도해 가는 인물이 게으름뱅이 총각에게 맞춰 있다. 새끼 서 발을 들고 가다 깨진 물동이를 버리러 가던 사람이랑 바꾸고, 깨진 물동이는 감쪽같이 붙여 두었다가 물동이를 이고 우물가에 왔던 아가씨가 잘못해서 깬 것처럼 하고는 멀쩡한 물동이와 바꾼다. 물동이는 죽은 개를 버리러 가던 사람이랑 바꾸고, 죽은 개는 주막집 아주머니가 쏟아 부은 구정물 한 자배기를 맞고 죽은 것처럼 해서 살아있는 개와 바꾼다. 이처럼 무언가를 버리러 가던 사람들은 게으름뱅이의 제안에 흔쾌히 승낙을 한다. 반대로 이미 생명을 잃은 것이었다는 것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은 자기가 잘못해서 그런 것인 줄로만 알고 살아있는 것들을 대신 주고 만다. 이 모든 과정을 주도하는 게으름뱅이의 모습은 치밀하고 교묘하기만 하다. 게으름뱅이라는 이유로 집에서 내쫓겼는데, 알고 보니 그건 아버지가 아들의 모습을 전혀 제대로 보지 못한 거다.
<업이하고 가재하고>는 ‘호랑이 먹이’라는 운명을 타고난 아이가 길을 떠나는 과정은 같지만 목숨을 구하는 과정은 사뭇 다르다. 보통 옛날이야기에서는 길을 떠난 아이를 도와주는 조력자가 등장한다. 하지만 업이에겐 조력자는 없다. 업이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줄 조력자를 스스로 구한다. 업이는 아이들이 괴롭히고 있던 가재를 자신이 짊어지고 있던 떡이 담긴 버들고리짝과 바꾼다. 그리고 죽을 목숨을 살려준 업이를 위해 가재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업이를 구한다.
같은 듯, 다른 부분이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옛날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이 훨씬 성격이 분명해진다. <닷발 늘어져라>에서 동생은 거지 노인을 위해 자기가 먹을 주먹밥을 몽땅 내어준다. <만석꾼 대감님>의 대감님은 신분을 뛰어넘어 머슴들과 똑같이 일한다. 그런 대감이니 쥐도 먹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똑똑한 양반>의 게으름뱅이는 알고 보면 아주 주도면밀한 인물이었다. <업이하고 가재하고>의 업이는 자기 목숨이 경각에 처해있는 상황에서도 아이들로부터 가재의 목숨을 구한다. 위기에 처한 이들이 위기를 극복하고 행운을 거머쥘 수 있었던 힘은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에게 있었다.
권정생 선생님이 남북어린이에게 주고 싶었던 말씀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싶다. <닷 발 늘어져라>의 동생처럼 자기가 먹을 수 있는 모든 걸 자신보다 더 힘들어 보이는 거지 노인에게 내놓을 수 있고, <만석꾼 대감님>처럼 신분에 상관없이 함께 일하고 살고, <똑똑한 양반>처럼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고, <업이하고 가재하고>처럼 자기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자기 목숨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다른 목숨까지도 돌봐줄 수 있는 여유를 갖는 삶 말이다.
아마 옛날이야기만큼 평범한 듯 하면서도 삶의 진실을 담은 이야기는 드물 것이다. 그래서 남과 북의 어린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로 기꺼이 옛날이야기를 쓰셨을 것이다. 더구나 남과 북, 어느 쪽에 있는 어린이든 옛날이야기에서는 하나가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4.
글을 마치며, 권정생 선생님만의 옛날이야기 새로 쓰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 싶다. 어떤 의미에서 이 두 권의 책 속에 담긴 옛날이야기는 이전에 발표하셨던 《길 아저씨 손 아저씨》(국민서관/2006년)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옛날이야기는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다. 이 말은 옛날이야기를 원본 그대로 전하는 것만이 가장 좋은 옛날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원래 옛날이야기는 구술자에 따라서 이야기가 조금씩 바뀌면서 시대와 장소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았다. 하지만 이제 구술자는 사라지고 작가들이 전해주는 옛날이야기 책만 남은 것이 현실이다. 옛날이야기를 대하는 작가의 태도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옛날이야기의 원형을 그대로 두면서도 자신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새롭게 써낸 권정생 선생님의 옛날이야기는 우리에게 옛날이야기를 어떻게 새로 쓸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대안을 제시하고 계신 게 아닐까 싶다.


이 글은 <어린이문학> 2010년 봄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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