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선생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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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제 목    [편지글] 권정생 선생님께 - 내 마음 속 별, 강아지 똥

  내 마음 속 별, 강아지 똥
 

권정생 선생님께

선생님, 잘 지내고 계신가요?
오늘은 오랜만에 <강아지 똥>을 읽었어요. 그동안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지만 오늘은 지난해에 나온 《먹구렁이 기차》 개정판에 새로 실린 정본으로 읽을 수 있어 참 좋았어요.

오랜만에 <강아지 똥>을 읽다보니 옛날 생각이 났어요.
20여 년 전, 어린이도서연구회 신입회원 교육 때였어요. 여러 번 접힌 A4용지 한 장 가득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쓰여 있는 <강아지 똥>을 나눠주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근데 전 ‘어? 이게 대체 뭐지?’ 싶었어요. 지금껏 제가 알고 있던 동화하고는 너무나 달랐거든요. 말투도 이상했고, 내용도 너무 추상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런데 분위기를 보니 저만 그랬던 것 같았어요. 전 기분이 완전히 우굴쭈굴해지고 말았어요. 아마 ‘강아지 똥’이 흙덩이에게 “넌 똥 중에서도 제일 더러운 개똥이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랑 비슷했을 거예요. 다들 나름 문학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저 혼자만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았어요. 문학이란 건 단 한 번도 제대로 배워본 적 없는 저 같은 사람은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만 같았어요. 그만 두어야 하나 마나 하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며 지냈어요.
덕분에 전 어린이도서연구회 활동 기간 동안 늘 선생님 생각을 하며 지냈어요. <강아지 똥>이, 그리고 《몽실 언니》가 왜 그리 훌륭한 작품인지, 또 권정생이란 사람이 누군지 너무 궁금했거든요.
그렇게 한 해 두 해가 지났고 어느 새 선생님이, 선생님 작품들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처음에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아!’라고 생각하던 저는 어린이 책에 빠졌고, 지금껏 어린이 책을 보며 지내고 있어요.
그러니 <강아지 똥>은 제 인생의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강아지 똥>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면 제가 그렇게 치열하게 생각하고 답을 찾으려 할 일도 없었을 테니까요. 어린이도서연구회도 잠깐 활동을 하다 그만 두었을 가능성이 높고요.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10년 넘게 지내고, 다시 지금까지도 어린이 책을 보며 지내니 어쩌면 전 <강아지 똥>에 많은 신세를 지고 있는 셈이에요.

제가 너무 추억에 빠졌나봐요.
그건 그렇고, <강아지 똥>을 보는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강아지 똥’ 보다 ‘흙덩이’랑 ‘감나무 가랑잎’이 더 눈에 들어왔어요. 흙덩이와 감나무 가랑잎이 강아지 똥에게 건네는 말이 그저 입에 발린 뻔 한 말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온 말이라는 것이 느껴졌어요. 만약 강아지 똥이 흙덩이와 감나무 가랑잎을 만나지 못했다면 강아지 똥은 아름다운 민들레꽃을 피워내지 못했을지도 몰랐겠다 싶어요. 아니, 어쩌면 아름다운 민들레꽃을 피워냈어도 이를 기뻐하기 보다는 꽃이 아니라 거름이 되어야 했던 자신의 처지만으로 불평하며 사라지고 말았을지도 모르겠어요.

문득, 내 인생에서 나를 변화시킬 힘을 준 여러 인연들에 대해 감사하고 싶어져요.

그리고,
아시죠?
제가 감사하고 싶은 여러 인연 중 첫 번째가 바로 선생님이라는 사실!
선생님 작품들이 모두 다 흙덩이와 감나무 가랑잎처럼 마음속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온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그리고 즐겁고 평안하게 지내세요.

                                                                                         2018년 5월 1일

                                                                                              오진원 드림.


이 글은 2018년 5월 9일 똘배아동문학회에서 주최한 권정생 11주기 추모제 발표 글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해마다 권정생 선생님의 책 가운데 한 권을 골라서 읽고 글을 써와서 발표하는 자리를 갖습니다.
올해 읽은 책은 《먹구렁이 기차 - 2017 개정판》(우리교육)입니다. 이 책에 실린 <강아지 똥>이 권정생 선생님이 정본으로 삼기를 바랐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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